"먹고 싶은 거요? 아무 것도 없어요."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배가 불렀다. 스스로 '미쳤구나'라고 되뇔 만큼 기대치 않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시상식에서 동메달리스트 올가 카를란(우크라이나)에게 기습 '키스 세례'를 받았으니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보통 해외 대회를 앞두면 식단을 조절하고 일상적인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터라 어머니가 손수 해주는 정성스러운 밥이 간절할 뻔 한데 김지연(24ㆍ익산시청)은 미소만 연신 지었다.
'발발이 검객' 김지연은 2일(한국시간) 영국 엑셀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결승에서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를 15-9로 제압하고 '금빛 찌르기'에 성공했다.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로 2000년 시드니대회 김영호(로러스 클럽 펜싱 감독) 이후 12년 만에 터진 금맥이다. 남녀를 통틀어 사브르 종목의 첫 메달 쾌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외신은 '무적 검객' 마리엘 자구니스(미국)를 준결승에서 제압한 것을 주목했다. 자구니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여자 사브르 개인전이 정식 종목이 된 후 올림픽 2연패 등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던 강자. 김지연은 6-12까지 밀렸으나 그 동안 쓰지 않았던 기술인 콩트라타크와 콩트르 파라드(막고 찌르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전술로 바꿔 15-13 극적인 승리를 거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외신들은 김지연에게 몰려들어 '자구니스를 이겨본 적이 있느냐, 어떻게 이길 수 있었냐' 등의 질문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김지연은 지난해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한 차례 이긴 뒤 연속 3차례 패해 1승3패를 기록 중이었다. 김지연은 "사실 준결승을 이겼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라며 감격해 하기도 했다.
여자 펜싱의 역사를 새로 쓴 김지연의 '깜짝 돌풍'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 이번 대회를 즐기면서 준비했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펜싱 칼을 들고 있으면 막 휘두르고 싶다. 펜싱을 시작한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라는 그는 '천생 검객'이다. 김지연은 유달리 발이 빠르다. 육상부를 제안 받았을 정도. '작은 몸집에 빨빨거리고 돌아다닌다'라고 해서 별명도 '발발이'다.
빠른 발이 강점인 그는 손 기술이 빼어난 서양 검객들을 상대로 '스피드'로 승부했다. 스피드를 강화하기 위해 줄넘기와 인터벌 달리기 등을 하며 올림픽을 준비했다. '발이 빠르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겠다'라며 김지연을 발탁한 김용율 사브르 감독의 예상을 오히려 뛰어넘었다. 정상에 오른 그는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원래 힘들면 포기를 잘 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포기가 안 됐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전에 경기를 했던 선배들의 결과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이제 펜싱은 인생의 전부가 됐다.
런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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