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팀들은 주로 ‘한’이나 ‘굿’처럼 한국문화 중에서도 심각하고 지극히 동양적인 소재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뤘거든요. 우리가 ‘비보이’라는 역동적인 소재를 택한 게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인 것 같아요.”
서울 이화여대에서 지난달 27일 열린 ‘이화-하버드 썸머스쿨 프로그램 학생 다큐멘터리 상영회’. 이날 상영회에서 최우수상 격인 관객상을 받은 가브리엘 월티(20·하버드대 동양학2)씨는 “책에서는 한국의 식민지 역사 같은 어두운 면을 주로 읽었는데 이번 작업으로 한국문화의 다이내믹한 면을 직접 볼 수 있어 기뻤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다큐멘터리 상영회는 2006년부터 이화여대에서 하버드대 학생들을 초청해 계절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이화-하버드 썸머스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개설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선 하버드대 학생들과 국내 학생들이 한 팀을 이뤄 다양한 한국문화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뒤 상영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10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참가해 ‘한’, ‘한국 여성의 변천사’, ‘한국의 종교문화’, ‘한국의 풍류’, ‘한국 비보이’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날 관객상을 받은 팀은 월티씨를 비롯해 크리스천 카르바할(19·하버드대 생물학2), 이예나(19·이화여대 국제학1), 신승혜(20·이화여대 경제학2)씨로 구성된 일명 비보이팀. 신씨는 “한국 비보이 댄스에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흥’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재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팀원 모두가 평소 춤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소재 선택에 한 몫 했다. 이씨는 “크리스천은 한국 비보이 댄스를 유튜브로 자주 봤고, 가브리엘은 탭댄스와 발레, 승혜는 교내 댄스동아리 부회장을 하고 있다 보니 춤이라는 소재가 나왔을 때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에 비보이 댄스만 있는 게 아니다. 머리로만 몸을 지탱하고 회전하는 비보이 기술, 헤드스핀을 담던 화면은 한 순간에 한국 부채춤의 군무로 카메라를 돌린다. 한 댄스 경연대회에서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다”며 호기롭게 등장해 막춤으로 무대를 휘젓는 이름 모를 할아버지도 남녀노소 없이 춤을 즐기는 한국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여겨 앵글에 담았다. 그래서 지난 한 달 간 이들은 ‘춤바람’ 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비보이 세계대회 ‘R16 코리아 2012’를 비롯해, 서울풍물시장 한쪽의 무대, 댄스 경연대회가 열리는 대형쇼핑몰 앞, 유명 비보이팀 진조크루의 연습실도 찾아갔다. 카르바할씨는 “인터뷰를 위해 무대를 찾아가면 노인관객이 많아 놀랐다”며 “특히 한국 여러 비보이팀들이 전통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들이 춤과 음악에 열광하는 모습 그 자체가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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