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기간에는 모두가 올림픽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챙겨 보는 드라마는 올림픽 중계 때문에 방송이 연기됐다. 동생이 즐겨 보는 예능프로그램은 갑자기 방송시간이 바뀌었다. 동생은 그 시간에 TV를 틀었다가 별 관심 없는 투기 종목 예선 경기를 봐야 했다. 나는 올림픽 덕에 수면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오전을 병든 닭처럼 보내고 있다.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도 올림픽은 단연 화제다. 오랜만에 이해관계가 결부돼 있지 않은, 보기에 좋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국제적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즐겁지 아니 한가.
올림픽에 환호하고, 좋은 성적이 감동을 받는 건 거기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런던 올림픽 유도 금메달을 획득한 송대남 선수는 올해 나이 서른 넷이다. 역시 이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재범 선수와 라이벌이었던 그는 여러 해 부상과 슬럼프 등으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체급을 올리고 절치부심한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물 넷이 아닌 서른 넷의 나이, 그가 흘렸을 땀의 깊이를 헤아릴 방법이 내게는 없다.
벌써 우리나라에 두 번의 금메달 소식을 알려준 사격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종목이다. 결선에 오른 선수들은 과녁을 앞에 두고 정연한 자세를 취한다. 심판의 사인에 맞춰 방아쇠를 당긴다. 점수가 바로 표시되고, 누구는 10점을 받지만 누구는 크게 실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다시 심판의 호령에 따라 격발. 그렇게 순위가 결정되고, 1위와 1위가 아닌 선수들은 서로 축하와 격려의 악수를 건넨다. 그들은 모두 인간 이상의 집중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서양의 전유물인 펜싱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팔 길이와 신장 등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운동 신경과 스피드로 극복한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신아람 선수는 그런 모든 것은 이미 극복했으나 1초를 극복하지 못했다. 명백한 오심에 소년 눈물을 쏟고 쉽게 경기장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최선을 다한 본인이 역시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지금까지 연습해온 펜싱으로 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심판과 주최 측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그것이 올림픽이다.
한편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중국부터 시작한 '져주기 게임'으로 한국 선수 역시 실격을 당한 배드민턴 이야기다. 시작이 어디였든지 상관없이 우리 선수 또한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올림픽이 아니다. 그들은 경기를 지켜본 관중과 팬에게는 물론, 수년 동안 셔틀콕을 다뤄온 자신의 몸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이번 실격에서 단순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스포츠고 올림픽이다.
세간에는 이런 풍문이 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올림픽에 쏟아질 때가 곧 정권의 기회라고 한다. 친인척 비리, 4대강 비리, 저축은행 비리, 대선자금 비리…. 셀 수 없이 많은 비리를 올림픽이라는 폭이 크고 유속이 빠른 강에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시커먼 비리라 올림픽이란 강도 곧 썩어버릴 것 같지만, 어쨌든 코너에 몰린 이명박 정권에게 올림픽은 반가운 손님일 것 같기도 하다.
뉴스를 들여다보면 속 시원한 소식은 하나도 없다. 경제는 위기라고 한다. 전세 값은 오르고 집값은 떨어진다. 집 있는 사람도 힘들고 집 없는 사람은 더 힘들다.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던진다. 학부모도 힘들고 아이들은 더 힘들다. 추악한 범죄가 백주대낮에 일어난다. 경찰도 힘들고 국민은 더 힘들다. 지하철에 사람은 많고 냉방은 약하다. 동생이 짜증을 내고 나는 더 힘들다. 그야말로 힘들어서 국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는 게 팍팍하고 힘이 들어서 올림픽에게 잠시 위로를 받는 것뿐이다.
국가 권력을 기업처럼 사유해버린 한 남성의 욕망은 그 성격과 모양새가 너무나 적나라해서 쉽게 잊기도 힘들다. 그는 진실로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위로의 이슈에 묻어서 뭔가를 후다닥 해치우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올림픽을 보고 있는 모든 국민이, TV에 허우적대는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일단 올림픽 보고 나서, 다음에 이야기 하자. 올림픽이라도 없으면 이 더운 여름, 이 강퍅한 세상, 진짜 힘들지 않는가.
서효인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