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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올림픽을 소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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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올림픽을 소비하는 법

입력
2012.08.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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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잠을 뺐어갔다. 새벽의 올림픽 중계까지 보려니 잠은 더 부족하다. 잠이 좀 부족하면 어떠랴. 박태환이나 박주영같은 스타들 보는 것도 좋고, 4년에 단 한번이라도 칭찬과 격려를 받는 유도, 핸드볼, 펜싱, 배드민턴, 양궁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긴장하며 시청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에게 올림픽은 무엇일까. 개인의 인간승리를 본다. 희로애락을 공감한다. 치맥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린다. 모처럼 애국심을 느낀다. 또 있다. 드라마 결방에 허탈해 한다. 국가에 함몰되는 개인을 본다. 애국심으로 포장된 선정적 중계에 실망한다. 스포츠 민족주의에 환멸을 느낀다. 관점에 따라 모두 맞는 말이 될 수 있다. 금메달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우중이라 매도할 수 없고, 애국 멘트 소리치는 해설자를 비판하는 사람 또한 냉소적이라 비아냥거릴 수 없다.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흐르는 강물 위를 보면서 깊은 물 속 심연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구가 있다. 딱히 학자에게만 적용될 이야기는 아니다. 메달에 환성을 지르건 올림픽 사수하는 올빼미 시청자들을 비판하건, 올림픽이라는 강물의 수면 아래 돌부리나 송사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보고자 애써야 한다.

유도 경기에서 파란 깃발 세 개가 심판위원장 한 마디에 하얀 깃발 세 개로 바뀌는 장면을 보며 경악했던 우리들은 정작 대통령의 측근인 전 감사위원이 누군가의 한 마디에 감방을 나서는 모습은 못 본 체한다. 보고도 무덤덤하다. 세 번의 찌르기 동안에도 흐르지 않은 1초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분노했지만, 인천공항 주요 시설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을 기어코 팔아버리겠다는 현 정권의 남은 넉 달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무심하다. 멀쩡한 다이빙을 부정스타트라며 실격시킨 심판에 대해서는 중국인이네 미국인이네 아니 캐나다인이네 하면서 악의와 무능력을 운운하고 자격 정지 소리를 높이지만, 불법행위 경력자가 대법관에 지명되고 평균 이하의 인권의식을 가진 이가 인권위원장에 재선임되고 칼질과 추문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이가 공영방송 사장을 계속하겠다고 버텨도 그들의 자격에 대해서는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오른 팔을 부상당해 변변한 공격조차 못하는 우리나라 유도선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워했지만, 그 장면에서 한 폭력 동영상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민간 경비업체 용역들이 군인같은 복장과 장비로 무장한 채 쇳덩어리를 던지며 노조원들을 폭행하는 영상. 유도 경기장에는 룰이라도 있지만, 공장 안의 아수라장은 부당하고 일방적이었다. 물리적 폭행과 이를 가능케 한 구조적 폭력, 그리고 사과문을 가득채운 냉소와 조롱. 올림픽에서 현실을 유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작 현실의 냉혹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올림픽은 기쁘게 즐길 수 있는 메가 이벤트다. 그 안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이나 유치한 민족주의, 음험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기면서 보람도 느끼는 이 이벤트를 거부하거나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다. 하지만 올림픽을 그저 값싼 오락거리 정도로 소비할 수만은 없다. 올림픽의 오심에는 흥분하지만 현실의 불합리와 부정에는 무관심하다면 밤잠 설치며 시청하는 보람이 없다. 메달을 위해 져주기라는 과정을 택했다가 실격당한 우리 선수들을 창피해 하면서 작은 결과물 하나로 불법적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위정자들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한다면 올림픽은 막장 드라마와 다를 바 없어진다. 스포츠는 보기만 하면 되니까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이기면 좋아서 흥분하고 지면 억울해서 흥분하다가 하루가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현실의 비상식은 스스로 안고 가야할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하고, 물론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지만 이를 보는 관중은 현실의 정의를 인식하고 실현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부족한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어젯밤의 흥분을 꿈처럼 기억하기보다는 일상의 낮에 만나는 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 올림픽 소비법이 아닐까.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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