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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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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

입력
2012.08.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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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나이에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최고 지위인 수석 무용수 자리에 오른 발레리나는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서희(26)씨는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다. 이 발레단의 남녀 수석 무용수 17명 중 유일한 동양인이다. 2005년 수습 단원으로 들어가 2006년 군무를 추는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2010년 7월 독무를 추는 솔리스트로 승급한 데 이어 지난달 6일 수석 무용수가 됐다. 누군가는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발레 스타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지목하고, 어떤 이는 강수진을 넘어설 잠재력을 가진 무용가로 평하기도 한다. 그는 지난달 ABT의 ‘지젤’ 내한 공연을 마치고 현재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하계 발레 스쿨에서 발레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달 31일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서씨는 “주변의 관심에 휩쓸리지 않으려 한다”며 예술가의 단단한 내공을 드러내는가 싶다가도 “‘무한도전’을 보는 게 일주일 간 쌓인 피로를 푸는 유일한 낙”이라며 방그레 웃는 영락없는 20대 아가씨였다.

_그야말로 금의환향이네요. 이전 귀국길에 이렇게 대중의 관심이 쏠린 적이 있던가요.

“‘지젤’ 공연을 코앞에 두고 한국에 와서 수석 무용수 승급도 또 그에 대한 많은 분들의 관심도 충분히 즐기지 못했어요. 인터뷰 요청이 올 때도 연습할 시간을 뺏기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컸죠.”

-마냥 얼떨떨하다던 수석 무용수 승급의 소감도 이제 정리됐겠네요.

“네, 지금은 얼떨떨하지는 않아요. 이제부터 제자리에 맞는 무용수가 돼야 한다 생각하니 까 휴가 중인데도 마음이 바빠요. 연습도 해야 하고.”

-무용계 안팎의 기대가 크던데요.

“예술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 거예요. 제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는 잘한다,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보다 내 방식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도달해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하죠. 주변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저를 흔들거나 그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거나 하지는 않아요.”

-칭찬에 쉬이 반응할 나이 아닌가요.

“사람들은 제가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해요. 맞아요, 시간상으로 보면. 그런데 발레단 생활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마음을 조금 다스릴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수석 무용수는 무용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고 정신이나 몸이 그에 맞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더 멀리 가야 하지만 이제 거기 갈 수 있겠다, 하는 시작점에는 선 것 같아요.”

-뭐가 그리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동기 하나 없이 혼자 입단해 발레단에 적응이 안 됐어요. 코르 드 발레, 솔리스트, 수석 할 것 없이 사람들 사이가 너무 끈끈해서 비집고 들어가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마음을 붙일 데가 없었죠.”

-어떻게 극복했어요.

“제가 발레를 참 좋아하는구나, 싶은 게 발레가 잘 되면 아무 것도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역할을 받고 무대에서 조금씩 춤을 출 수 있게 되면서 생활도 점점 좋아졌어요.”

_강수진씨와 비교하는 분들이 많아요.

“말도 안 되요. 강수진 선생님은 어떤 예술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분이에요. 인격적으로도, 무용가로서도. 발레 하면 강 선생님이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하니까 제가 발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죠.”

_함께 공연도 했죠?

“2년 전에 ‘강수진 갈라쇼’ 지방 공연에 출연했어요. 뉴욕의 링컨센터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처럼 좋고 멋진 극장에서 비싼 옷 입고 오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던 제게 그것만이 발레가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준 공연이었어요. 어린 관객들이 사인회에 와서 부끄러워하면서 ‘너무 좋았어요’라고 하는데 마음이 묘했어요.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기면 무대를 가리지 않고 제 춤을 좋아해주는 관객들을 찾아 다니고 싶어요. 저는 그전까지 사람들이 이런 말을 그냥 말로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강수진 선생님은 요즘도 지방 투어 중이시잖아요. 정말 인격도 훌륭하신 분 같아요.”

서씨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6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발레를 처음 접했다. 선화예중 2학년 때 미국 워싱턴 키로프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 지금까지 14년 간 홀로 외국에서 살았다. 2003년 로잔 콩쿠르 부르스(장학금)상에 이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산하 존크랑코발레학교에서 수학 중 ABT 입단 제의를 받았다.

_발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주변에 무용하던 사람도, 발레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정말 난데없이 저한테 온 게 발레였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발레부가 된 건데 여기까지 왔네요.”

_부모님이 어떻게 중학생 딸을 홀로 유학 보낼 생각을 하셨는지.

“엄마가 반대하셨는데 제가 가겠다고 설득했어요. 아마 그때는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제가 가르치는 중학생을 보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 싶어요.”

_해 보니 어떤가요, 홀로 하는 외국 생활.

“시간이 흐를수록 집과 가족, 한국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만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이 좋아요. 좋은 이유는 제가 아직 배울게 많기 때문이에요. 노력을 하면 항상 깨우침이 있거든요.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_발레리나 뒷바라지 하는 부모는 극성스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외국 생활하는 친구들 중에 한국에 오면 집이 아닌 호텔에 묵는 경우가 있어요. 부모님의 과한 관심이 부담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집에 가면 그냥 엄마 아빠 딸이에요, 발레 하는 서희가 아니고. 이번 ‘지젤’ 첫 공연에도 제사가 있어서 못 오신 걸요. 저도 공연 전날 집에서 전 부쳤어요. 집에 가면 일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을 수 있고 진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게 좋아요.”

_발레를 시키려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도 부잣집 딸 아닌데 발레 하잖아요(그의 어머니는 전업주부, 아버지는 고교 교사다). 그래도 늘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셨죠. 토슈즈는 아끼지 말고 원하는 대로 신으라고 하시고. 버리려고 둔 토슈즈를 본 엄마가 ‘이거 조금 더 신을 수 있지 않을까’하신 적이 한 번 있긴 하지만. ”

_연습을 아주 독하게 한다면서요.

“뭔가를 하려고 하면 끝은 보는 것 같아요. 꼭 1등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자신에게 한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좌절도 크겠어요.

“답답하고 미치겠어요, 그럴 때는. 눈물이 많아서 울기도 많이 울어요. 힘든 일은 울고 풀면 돼요. 가슴에 쌓아두지 않고 풀고 다시 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슬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니까. 다행히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요.”

_무대에서 크게 실수한 적도 있어요?

“엉덩방아를 찧은 적이 있어요. 솔리스트 승급을 통보 받은 날이었죠. 어찌나 기쁜지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은데, 그러고 나면 멀쩡한 정신으로 공연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흥분한 상태로 무대에 섰는데 무대에 미끄러운 부분이 있었나 봐요. 발 동작이 빠른 조지 발란신 안무의 춤을 추다가 확 미끄러졌어요.”

-관객도 봤어요?

“막이 올라가고 있어 못 보신 분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동작을 한 번 더 하다 같은 지점에서 또 넘어진 거예요. 마침 남동생이 뉴욕에 머물고 있어서 제 공연을 보러 온 날이었어요. 그날 제가 공연한 다른 파드되(2인무)의 평이 타임지에 났는데 제가 엉덩방아 찧은 에피소드가 같이 소개됐어요.”

-넘어지고 나니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넘어진 직후는 정신이 없었죠. 다음날 단장님을 보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제가 무대에서 넘어진 게 처음이거든요. 그런데 단장님이 제가 귀엽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 애가 얼마나 좋았으면 거기서 넘어졌을까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보다 넘어지는 게 낫다’고 위로해 주셨어요.”

서씨는 발레에 맞는 몸을 타고 났다는 평을 받는다. 갸름한 얼굴에 목과 팔, 다리도 길다. 그는 “좀 모자란 부분도 있기 때문에 내 몸이 예쁘다고 생각한다”며 “발레로 혹사당하는 내 몸을 위해 홍삼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_자신의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네.”

_어디가 그렇게 예쁜가요.

“어디 한 군데 콕 찍어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 그냥 전체적으로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좀 모자라야 아름다운 것도 있다고 믿거든요. 제가 축복을 많이 받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몸도 그렇지만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고 또 부모님이 올바르게 키워주신 것도 있고.”

_발레리나의 비쩍 마른 몸과 발레 동작을 보면 발레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혹하죠. 자연 상태의 인간의 몸을 모두 반대로 쓰는 거잖아요. 가끔 동작이 왜 이렇게 안 되나 생각하다가 안 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제가 발레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하고.”

_고생한 몸을 위해 뭘 해 주나요.

“홍삼을 먹어요. 그리고 좋은 스파에 가서 가장 저렴한 손톱 관리를 받아요(웃음). 나는 이런 돈 쓸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생각하면서. 쇼핑도 하고 싶은데 발레 이외에 몸을 쓰는 것은 조금 아까워서 잘 하지 않아요. 발레 하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기는 하죠.”

_밥도 새모이만큼 먹을 것만 같고.

“다이어트는 하지 않아요. 굳이 안 먹어도 될 것을 먹지는 않지만 과자를 안 먹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오늘 아침에도 된장찌개, 겉절이, 오징어 무침에 밥 먹고 나오면서 쿠키도 먹었어요.”

-다이어트를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168㎝에 48kg 몸무게인가요.

“저 47kg인데요(웃음). 보통 사람이면 어렵겠지만 저희는 운동을 계속 하고 있잖아요.”

_자신의 성격을 발레 캐릭터와 연결해 설명해 본다면?

“‘지젤’ 같이 순수한 면도 있고,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처럼 사랑을 위해 좀 과감하게 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백조의 호수’의 백조처럼 평온할 때도 있고 ‘흑조’처럼 좀 날카로울 때도 있고. 다중이죠.”

-사랑을 위해 과감해요?

“연애를 해야지 과감하죠. 지금은 연애를 안 한지 꽤 됐어요. 너무 오래돼 부끄러워 이야기는 못하겠어요.”

_연예인 이선균씨가 이상형이라죠?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닭살 돋는 캐릭터는 별로인데 그냥 외모가 좋아요. 이름으로 궁합 보는 스마트폰 앱으로 맞춰 보니 80점 정도 나왔는데 그분 아내인 전혜진씨 이름을 넣어 보니 더 높은 점수가 나오던데요(웃음).”

_발레 말고 좋아하는 건 뭔가요.

“‘무한도전’ 좋아해요. 일요일마다 ‘무한도전’ 다운 받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MBC 파업 때문에 몇 달을 못 봤잖아요. 그 대신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재미있게 봤는데 또 런던 올림픽 때문에 방송을 안 하던데요. 다행히 ‘무한도전’이 돌아왔어요.”

최근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 수준이 높아지면서 유럽과 미주, 아시아 등지의 발레단에서 정기 급여를 받고 활동하는 한국인은 다수의 군무 무용수를 포함해 200여명에 이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효정,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 루마니아 국립오페라발레단의 윤전일 등은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서희씨가 소속된 ABT는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등과 더불어 세계 최정상의 발레단으로 꼽힌다. 영화 ‘백야’로 유명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러시아에서 망명한 나탈리야 마카로바 등이 ABT 출신이다. 하지만 이번 ABT의 ‘지젤’은 현존 최고의 발레리나로 꼽히는 줄리 켄트와 서희씨가 주역으로 나섰음에도 흥행에 실패했다. 티켓 값이 지나치게 비쌌던 탓이다.

_‘지젤’ 관객이 너무 적어 속상했을 것 같아요.

“객석이 텅 비어 있어 깜짝 놀랐어요. 저희 발레단이 객석을 비워 놓고 공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티켓 가격 이야기는 한국에 와서 기사로 보고 알았죠. 참 아쉬워요. 저희 발레단이 자주 오지 못하니까 더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_ABT를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못박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저희 발레단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발레단이라 생각해요. 발레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수에게 ‘ABT에 들어오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누구라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발레단이라는 거죠. 그만큼 레퍼토리나 기술, 예술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3대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아도 무용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 같아요.”

-다른 발레단과 비교해 ABT만의 특징과 장점은.

“ABT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아메리칸’이라는 미국 다인종 사회의 특징과 연극적인 것, 극장을 의미하는 ‘시어터’가 합쳐졌잖아요. 고전, 모던, 현대 발레를 아우르고 무용수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죠.”

_수석 무용수가 됐으니 이제 다음 목표는 뭔가요.

“지금은 제자리에 맞는 무용수가 돼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수석 무용수가 된 지 한 달도 안 됐잖아요. 그 사이에 제 춤이 변한 건 없을 거에요. 어떤 동작이 조금 더 잘 됐다, 못 됐다 하는 변화 정도가 있겠죠. 한 달 만에 훌륭한 발레리나가 된 것은 확실히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이제부터 거기에 맞는 무용수가 돼야 하니까. 저는 발레리나 서희이기도 하지만 ABT의 발레리나이기도 하잖아요. ABT 수준에 맞는 공연을 매번 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는 것, 지금은 그거 하나만 생각해요.”

_그 이후에는요.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제가 제자리를 찾아서 역할을 잘 하는 무용수가 되고 나면 결혼하고 아기도 많이 갖고 싶고 그래요. 아이를 많이 낳았으면 좋겠어요, 능력이 되면.”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전혼잎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 4)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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