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6년까지 60대의 차세대 전투기를 구매하는 게 차기전투기(F-X) 사업이다. 창군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인지라 국민과 언론, 그리고 정치권의 관심도 높다. 군이 요구하는 작전성능을 충족하면서 경제성도 있고 우리의 기술력도 높일 수 있는 전투기가 도입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입에 맞는 떡'을 찾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말들이 나돌고 있는 것 같다. "특정 기종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 "비행기를 타보지도 않고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느냐?" 심지어는 "특정 기종을 내정해놓고 무리하게 서두는 것 아니냐?" 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 같다. 이러한 논란들은 앞으로 진행될 시험평가와 협상 과정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주리라고 본다.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들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기종에 특혜를 준다거나 사실상 내정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과 관련해 이 사업에 영향력이 큰 어떤 인사가 그런 오해를 불러올 언동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부 군사 전문가들이 우리 군에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핵 시설을 비롯한 전략표적들은 대부분 지하화 되어 있고 산악 지형의 후사면에 위치해 야포나 지대지 유도탄 등으로는 파괴가 어렵고, 전투기가 근접해 지하로 침투 파괴 할 수 있는 대형 정밀 폭탄을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방공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방공망을 뚫고 폭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주장들 때문에 특정 기종에 특혜를 준다는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공군의 현실은 스텔스가 아니면 안 된다고 버틸 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우리 공군 전투기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F-4나 F-5 전투기는 30년 이상 된 노후기종으로 수명을 최대한 연장한다 해도 2018년께는 모두 퇴역할 수밖에 없고 공군은 최소 소요인 420대에 턱없이 부족한 300대 이하의 전투기만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기종만을 고집한다면 사업 자체가 표류할 수밖에 없고 또 몇 년이 지연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은 작전요구성능에서 스텔스기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삭제하고 평가요소 별 가중치를 공개해 성능뿐만 아니라 비용과 기술이전도 기종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일부에서는 평가 비행을 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것도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 전투기 기종선정은 완제품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요구하는 성능을 갖춘 항공기를 납품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주문생산 방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우리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갖춘 항공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F-35는 여러 부문에 대한 시험이 진행 중이고, 여러 형태의 F-15가 있지만 F-15SE는 아직 개념상의 항공기일 뿐이며 유로파이터도 항공전자부분은 많은 보강이 필요하다.
항공사들은 실제비행, 추적비행, 계측장비, 시뮬레이터 등을 통해서 또는 다른 시험결과물을 제시해 정해진 기간까지 요구 성능을 충족하는 항공기를 제작 납품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제시된 자료를 실현가능한 것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냐는 평가관 들의 능력이며 협상을 통해 보장받아야 할 부분이다. 이제 곧 공군평가단이 현지평가에 임할 것이다. 계획된 기간 내 명쾌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완벽한 평가를 위해 기간이 늘어나고 유리한 협상을 위해 기종 결정이 지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사상 최대 규모인 F-X사업이 정권교체 등 외부 요인에 구애됨이 없이 계속 추진되어야할 것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가장 모범적인 사업으로 역사에 남아야 한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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