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의료사고로 숨진 30대 여성을 유기한 사건의 뒤에는 중독성 있는 수면유도제의 남용과 허술한 관리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숨진 여성은 피로회복을 위해 미다졸람을 맞다 목숨을 잃었고, 지난달 31일에는 프로포폴을 맞는 데만 5억~6억원을 쓰며 중독된 30대 여성이 한 성형외과에서 이 약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미다졸람, 프로포폴, 케타민 등은 수면 내시경, 지방흡입, 치과 치료 등 때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수면유도제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일부 의사들이 피로 회복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마구잡이로 투여하면서 중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연예인과 유흥업소 종사자들 사이에는 ‘피로 회복제’라 불릴 정도로 상습적 사용자들이 적지 않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몇 시간만 맞아도 피로가 확 풀린다고 하기 때문에 한참 스케줄이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데려가 몇 시간 맞게 한다”며 “문제는 그러다 인기가 떨어져 스케줄이 없을 때에도 그 느낌을 못 잊고 병원을 찾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한 대형성형외과의 원장은 “지난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이들 약품만으로 하루에 3,000만원 이상을 챙기는 병원도 있을 정도로 강남의 성형외과나 산부인과들 사이에 노다지로 불렸다”며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 경쟁은 치열해지고 손님이 줄다 보니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이들 약품을 마구잡이로 투여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른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는 “프로포폴은 지난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된 후에도 병원들이 음성적으로 피로 회복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향정신성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의사 본인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거나, 의약품을 빼돌려 판매하지 않는 이상 처벌할 수 없고 환자 치료 목적이라면 의사의 재량에 따라 투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보통 영양제와 섞어서 투약하기 때문에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웅 이대목동병원 여성암전문병원 교수는 “약효가 강한 프로포폴의 경우 급성호흡부전 환자에게는 치명적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마취 전문의를 통해 신중한 투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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