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한국시간)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 온통 백인뿐인 선수들 사이에서 검은 피부의 한 소녀가 반짝였다. 흡사 하늘을 나는 다람쥐를 연상시키는 150㎝의 작은 소녀에게 수만 관중이 매료됐다. 미국 체조 대표팀의 가브리엘 더글라스(17)다.
더글라스는 이날 열린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결선에서 '나는 다람쥐(Flying Squirrel)'라는 애칭에 걸맞은 날렵하고, 정확한 연기를 선보였다. 도마-이단평행봉-평균대-마루운동 4개 종목에 나가 평균 15.366점 이상을 받으며 미국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더글라스의 활약으로 합계 183.596점을 얻은 미국은 2위 러시아(178.530점)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이 종목에서 미국이 금메달을 딴 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16년 만이다. 또 라이벌 중국(4위ㆍ174.430점)에도 2008 베이징올림픽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번 우승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선수로는 첫 번째 금메달리스트가 된 더글라스. 어머니 나탈리 호킨스의 결단과 훌륭한 스승 차우량이 없었다면 그의 올림픽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글라스가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건 2010 팬 아메리칸 챔피언십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부터다. 그는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위해 새로운 코치를 찾아나섰다. 우연찮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체조 학교(Chow's Gymnastics and Dance Institute)를 운영하던 차우량(44)을 만났다. 10년 넘게 중국의 체조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차우량은 1990년 코치 연수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98년 아이오와주의 웨스트 디 모인에 거주하고 있었다. 2002년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숀 존슨(20ㆍ미국ㆍ은퇴)을 지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중국 출신으로 미국 대표팀을 이끌어 화제가 됐다.
차우량을 스승으로 점 찍은 더글라스는 망설임 없이 웨스트 디 모인으로 나홀로 '체조 유학'을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 15세였다. 어머니 호킨스는 "딸을 보내지 않고 집(버지니아)에 두고 싶은 건 단지 내 옆에 두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인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며 "도박과 같은 힘든 결정이었지만 내가 옳았다.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다. 당시 아버지 티모시 더글라스는 아프가니스탄에 공군으로 참전 중이었다.
이후 더글라스는 성장을 거듭했다. 숀 존슨이 은퇴하던 지난 6월까지는 그와 함께 훈련했다. 차우량은 "지난 몇 달간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astounding)"라고 말했다. 더글라스는 3일 체조 개인종합 금메달에 도전한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