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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배트맨, 솟구치지 말고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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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배트맨, 솟구치지 말고 앉으세요

입력
2012.08.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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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았다. 현대의 비관주의자들, 지구가 망해 가고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챙겨봐 왔을 것이다. 왜 '다크나이트>' 비관주의자들에게 어필할까. 이 영화의 악인은 그저 심성이 삐뚤어지고 광기에 물든 인물이 아니다. 악인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악인은 타락한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악을 행한다. 그는 파멸을 앞당겨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겠다는 냉정한 책임감의 소유자다.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악이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악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만을 연료로 삼는 테러리스트, 가공할만한 살상 무기로 바뀌는 핵에너지 등은 현대의 문명적 사건들, 예를 들어 9ㆍ11 사태, 테러와의 전쟁,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의 역사적 현실을 가공한 소재들이다. 그 모든 악들은 자본주의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공인 선한 인물들은 어떤가. 브루스 웨인 같은 선한 자본가? 고든 같은 선한 경찰? 사실 현대 사회에서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선한 자본가와 선한 경찰이 등장하리라는 기대는 다소 난망하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선한 자본가와 선한 경찰이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경찰들을 안다. 우리는 배트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선한 자본가도 안다. 문제는 그 선함이 개인적인 자질로 축소되었다는 사실이다. 선한 자본가와 선한 경찰이 등장할 가능성은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와도 같다. 요컨대 선한 자본가와 선한 경찰의 존재는 '필연적'이지 않다. 필연이라는 견지에서 보자면 자본가들은 이윤을 추구하고 경찰은 명령을 따른다. 이런 것들은 그들에게 선택의 옵션이 아니라 강철 같은 규칙으로 부과된다. 이때 발생하는 피해는 악이 아니라 콜래트럴 대미지로 여겨질 뿐이다. 용산참사에서 6명의 희생자, 삼성 반도체의 56명의 희생자, 쌍용자동차의 22명의 희생자들에 대해 자본과 경찰은 말한다. 애초에 자신들의 정당한 의도에는 그들의 죽음이 계획되지 않았다고. 그렇게 그들은 국가경쟁력, 치안 등의 '이유'로 죽음의 '원인'을 덮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유, '내가 왜?'에 관해서는 당당하기까지 하다. 어느 전직 경찰은 <도전과 혁신> 이라는 비장한 제목의 자서전까지 내지 않았던가.

여기서 두 번째 악이, 이번엔 구조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자질의 차원에서 발생한다.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강변함으로써 희생을 가져온 구조적 악을 뻔뻔하게 외면하기. 그래서 어떤 자본가들과 어떤 경찰들은 개인으로서도 '악'이다. 개인적 자질로서의 우연적 선함과 달리 개인적인 자질로서의 악은 모종의 집요한 욕망에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명성에 흠집을 남기지 않겠다는 욕망, 상징적·물질적 이윤을 챙기겠다는 욕망,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목적을 관철시키겠다는 욕망, 끝까지 권좌에 남겠다는 욕망.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우연적 선으로 필연적 악을 물리치는 허구를 보여줌으로써 비관주의를 강화한다. 그런데 이 비관주의는 지극히 보수적이다. 영화에서 악당 베인은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습격을 연상시키는 교도소 습격 장면에서 고담 해방을 선포한다. 영화는 프랑스 혁명이 가져올 사회적 파탄을 우려했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나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적인 시선으로 무질서와 폭력으로 빠져드는 대중을 묘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의 다른 대중을 알고 있다. 사적인 증오와 복수심보다 동료와 가족의 인간적 삶을 위해 연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 선함이 우연적인 개인적 자질이 아니라 집단적 덕목이자 원칙인 사람들. 그들은 배트맨이 나타나면 일단 밥을 권하고 대화를 나누자고 할 사람들이다. 솟구치지(rise)말고 같이 앉자고 말할 사람들이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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