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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외갓집 같은 그곳… 예천 금당실마을·영주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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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외갓집 같은 그곳… 예천 금당실마을·영주 무섬마을

입력
2012.08.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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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둥지는 금빛 햇살에 춤추고, 모래밭은 은빛 강물에 흥얼대고…

부라보콘 값이 150원 하던 유년 시절. 테마파크도 리조트도 없던 그때 여름방학이 되면 너도나도 쪼르르 시골로 달려갔다. 시외버스 내려서 완행버스 갈아타고 신작로를 한참 달려 닿는 곳은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는 큰집이거나, 큰외삼촌 농사 짓는 외갓집이거나, 막내 삼촌 소 키우는 작은집이거나 그랬다. 놀거리라고 해봐야 물장구치고 매미 잡고 강냉이 따는 게 전부. 하지만 요새 아이들이 모르는 재미가 거기 있었다. 익지도 않은 머루 따먹고, 방 안으로 날아든 박쥐에 놀라 잠을 깨고, 낮에 같이 놀던 누렁이가 저녁상에 탕으로 올라와 울고불고 하던 그런 추억 말이다. 멀지 않은데 아득한 시간이다. 시골집 동네는 도시의 변두리처럼 변해버렸고 기억은 벌써 희미하다. 이번 방학, 마냥 만만하고 정겨웠던 시골 외갓집의 여름을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건 어떨까.

도라지꽃 핀 예쁜 돌담길, 금당실마을

도시 사람의 때가 덜 묻은 시골을 누가 물어보면, 머릿속으로 덕유산 자락의 전라북도 땅이나 소백산과 주왕산 사이 경상북도 내륙을 더듬는다. 서울과 가까운 강원도는 산자수명한 곳마다 리조트고 골짜기마다 구석구석 펜션인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북 예천은 흙냄새와 사람의 체취가 아직 비슷한 농촌 가운데 하나다. 굴뚝이라곤 군(郡)을 다 뒤져봐야 읍내에 있는 흙벽돌 공장 하나뿐. 특별할 건 없다. 불과 몇 해 전에야 회룡포와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 터가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예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제 그래서 귀한 시골이다.

예천읍에서 용문사 쪽으로 가다 보면 낮은 돌담이 이어진 마을을 지나게 된다. 금당실마을이다. 땡볕 무서웠던 지난 주 목요일 이른 아침. 용문면사무소 맞은편 반백년은 족히 묵었을 정미소 앞에서 만나기로 한 문화관광해설사를 기다리는데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노올러 왔니껴? 집에 가가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드리니껴?" 아침거리라도 해오는 참인지 손에 푸성귀를 들었다. 몸뻬의 물방울 무늬가 곱다. TV만 켜면 온통 흉흉한 소식인데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일 인심이 이 마을엔 아직 남은 듯했다. 금당실은 에 병화불입지지(兵禍不入之地ㆍ전란이 미치지 못하는 땅)라고 기록돼 있다.

마을의 자랑은 7㎞ 남짓 되는 돌담이다. 황토를 이겨 돌을 쌓았는데 막돌담장, 토석담장, 기와담장이 어깨 높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해설사 정학진씨에 따르면 돌담길은 본래 24㎞가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게 폭을 넓혔지만 예전엔 나무지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였다고. 이 마을에 와서는 길을 잃고 미로 속을 헤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단다. 오래된 한옥, 최근에 초가 지붕을 새로 올린 집, 시멘트로 지은 집들이 사이 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사괴당(문화재자료 제337호) 등 예닐곱 채의 고택과 초가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작은 마을 치고 역사가 깊어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수십 기, 조선 양반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반송재 고택, 구한말 세도가였던 이유인의 99칸 집터 등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마을 서북편의 송림은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됐는데 해질녘 금빛 햇살이 사선으로 들 때 반드시 찾아가볼 일. 밥 짓는 연기라도 스며들면 모기에 뜯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얘깃거리 많은 곳이니 하루 이틀 먹고 자며 시골집의 정취에 푹 젖을 수 있다. 헐렁한 추리닝과 시장에서 파는 '삼선 슬리퍼' 같은 패션이, 파란 도라지꽃 핀 이 돌담길에선 잘 어울린다.

외나무다리 건너 찾아가는 옛집, 무섬마을

소백산 국립공원과 부석사, 소수서원 등이 걸쳐 있는 북서쪽 말고 안동, 봉화 땅과 맞닿는 영주의 남동쪽도 어지간히 외진 곳이다. 내성천이 나지막한 산과 오래된 마을들을 감고 도는데, 영주시의 경계가 끝나는 부분, 물줄기가 말발굽 모양으로 크게 휘어지는 곳에 무섬마을이 있다. 마을은 은빛 강이 삼면을 두른 너른 모래밭을 딛고 산을 등받이 삼아 느긋하게 자리잡았다. 반푼이라도 배산임수, 네 글자를 깨칠 수 있는 모양새다.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엔 전국 어디서나 멀고 먼 곳이라 이곳 역시 최근에야 외지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들은 그래서 누구나 외손주 보듯 반갑게 맞아준다.

내성천은 깊지 않지만 넓어서 1970년대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엔 외나무다리 하나가 마을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글 배우러 오는 다른 동네 아이들도, 놉 일꾼으로 딴 마을 가는 농사꾼도, 시집 오는 새색시 맨 가마꾼도 모두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사라졌다가 2005년 복원됐다. 폭은 약 30㎝. 물이 얕은 곳을 따라 휘어져 있어 길이는 100m 가까이 된다. 외지인이 건널라치면 꼭 한 번씩 빠지고 만다. 깊어야 허리 높이 정도이니 걱정할 건 없다. 모래밭에서 젖은 옷을 짜고 있으면 마을 어른들이 웃음 섞인 타박을 한 마디씩 하고 간다. "외지 때를 안 벗고 들어옹께네 글치."

1666년 반남 박씨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니 역사가 짧지 않다. 38채의 전통 한옥 등 50여 채의 집이 남아 있다. 뭐 그럴까 싶은데 300년 넘어 문화재로 지정된 집도 몇 채 있다. 몇 년 새 초가를 새로 올린 집이 늘었는데 그냥 녹슨 슬레이트 지붕이 더 예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회나 양동 등 경북 지역의 다른 전통마을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관광지로 변해버린 곳과 달리 사람 사는 인심이 있다. 명절 때 아니면 마을은 내내 썰렁하다. 여름철엔 그나마 외나무다리 곁에서 소란을 떠는 사람이 있지만 아직 그 소리가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민박 치는 집이 몇 집 생겼다. 문을 두드리면, 돌아가신 외할머니 같은 분이 무릎 짚고 나와서 반겨주실지 모른다. 여든, 아흔 되신 분들도 많다. 객지 생활 힘들었다며, 무작정 투정을 부려도 될 듯한 넉넉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 여행수첩

●수도권에서 금당실마을로 가는 길은 중앙고속도로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쪽이 편하다. 점촌함창IC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읍으로 간 뒤 용문사 방면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고택 숙박 안내 (054)654-2222 ●중앙고속도로 영주, 예천IC가 가깝다. 영주에서는 장수면과 문수면 거쳐 내성천을 따라 가면 닿을 수 있고 예천에서는 928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가 열린다. 숙박 안내 (054)634-0040

예천ㆍ영주=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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