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균형발전을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됐던 지방 개발사업들이 표류하면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도시ㆍ혁신도시ㆍ신발전지역ㆍ동서남해안권ㆍ접경지역 개발 등 굵직한 지방 살리기 사업이 넘쳐나지만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게 부지기수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4대강 살리기 등 MB정부 주력사업에 밀려 동력을 잃은 경우가 많다. 해당 지역에선 길게는 10년 이상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채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랜 기간 땅만 묶어 놨다”는 주민들의 아우성이 거세다.
1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ㆍ덕산리 일대. 너른 논밭이 펼쳐진 모습이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흉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민 이모(64)씨는 “기업도시로 지정됐다는 정부 발표에 잔뜩 기대를 했는데 이게 뭔지…”라며 푸념했다. 변변한 기업 하나 없던 무주군이 강원 원주, 충북 충주 등 6개 지역과 함께 기업도시 시범사업지구로 선정된 것은 2005년 8월. 무주는 2020년까지 1조4,171억원을 들여 레저휴양ㆍ비즈니스 지구 등을 갖춘 기업도시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오직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며 각종 개발행위 제한 등 불편을 감수했다. 일부 주민은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미리 대출을 받아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 토지보상계획공고를 앞두고 사업주체인 대한전선이 돌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불안으로 사업 추진이 어렵다”며 사업권을 포기했고, 결국 지난해 1월 무주기업도시는 무산됐다. 피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주민들은 대한전선을 상대로 19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천석 대책위원장은 “정부를 믿고 따른 주민들이 왜 물질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좌초된 사업은 기업도시뿐만 아니다. 2020년까지 전남 신안ㆍ무안군 등 일원에 테마파크, 리조트 단지, 미술관, 식물전시장 등을 조성하는 서남해안권 종합발전계획 사업도 누더기가 됐다. 2008년 사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상 사업지가 기존 1,216.1km²에서 782.98km²로 대폭 축소됐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에 목을 맸던 경제자유구역도 개발 지연으로 인천 영종도, 부산ㆍ진해 등 12개 단위지구(90.4㎢)가 해제됐고, 사업성 논란으로 추가 지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별법에 따라 2020년까지 동서남해안권을 동북아 5위 경제권역으로 개발하겠다는 사업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남해안권은 총 166개 사업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66개만 착공했고, 동해안권(119개 중 55개)과 서해안권(99개 중 31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처럼 지방 개발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는 것은 상당수가 민간 투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남권 신발전지역 사업의 경우 총 개발사업비 3조6,987억원 가운데 85.7%(3조1,717억원)를 민자로 충당하게 돼 있는 등 대부분 사업에서 민자 투자액이 절반을 넘는다. 총 22조원의 공사비 전액을 국가 및 지방정부 재정사업으로 추진한 4대강 사업과는 대조적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민자 투자 유치가 어렵다 보니 대다수 사업이 조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지방 사업 대다수가 낙후지역 개발 명목의 특별법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개발지가 겹치는 등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개발 사업이 5개나 중복되는 지역이 11개 시ㆍ군에 달한다. 정부에서 39개 법률에 근거해 55종의 지역ㆍ지구(13만 860.07㎢)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해당 지역 땅값이 매년 평균 26.5%나 치솟은 것도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장철순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골프장, 휴양시설, 실버타운, 복합산업단지 등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소규모 유사 사업이 경쟁함으로써 수익성이 불확실하다 보니 민간에서 투자를 꺼리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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