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5월 구 조세감면규제법에 대한 대법원의 법률 해석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또 다시 대법원 판결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양대 사법기관이 최고 사법기관의 지위를 놓고 본격적인 자존심 싸움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헌재는 ㈜교보생명보험과 KSS해운이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개정돼 효력을 잃었음에도 대법원이 유효라고 보고 세금을 물린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효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헌재는 지난 5월에도 GS칼텍스 등 2개사가 낸 유사한 헌법소원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헌재가 사실상의 '재판 소원' 판단을 내렸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법원 판결에 대한 위헌성을 따지는 재판소원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특히 지난 10일 퇴임한 김능환 대법관은 "이상한 논리로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헌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에 "실효된 조항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일종의 입법행위가 돼 헌법을 침해한다고 5월31일 결정했다. 이번 사건도 같은 취지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소송 당사자인 교보생명 등은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는 이미 재심 청구를 한 상태다. 그러나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대법원이 헌재 결정 때문에 이미 최종 확정된 판결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심을 거부하는 법원과 헌재의 위헌 결정이 맞물려 힘겨루기가 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만 속앓이를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과세를 하라"는 법원의 판결문을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헌재 결정문을 무시해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시변)의 이헌 변호사는 "결국 국세청과 업체가 합의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업체당 수백억원에 달하는 세액을 생각하면 어느 한 쪽이 포기할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법원이 일련의 헌재 결정을 '3심제'라는 사법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어 양 기관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헌재 역시 이 사건 외에 아예 명시적으로 재판소원을 요구한 사건을 연구하는 등 기본권 침해 문제 등에 한정해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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