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부터 시행되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도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전문적 진료가 필요한 경우 당직 레지던트(전공의)가 아닌 당직 전문의를 호출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일반적인 개념과 달리 당직자의 병원 내 상주를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1차로 응급실 의료진이 진료를 한 후 다른 진료과의 전문적 진료가 필요할 경우 당직 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해야 한다. 전문의는 직접 와서 진료를 해야 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해당 병원의 장은 과태료 200만원을 내야 하고 해당 전문의는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다.
문제는 당직 전문의가 병원에 상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집에서 대기하다 호출을 받고 오는 당직 전문의가 과연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수도권 대학병원 4년 차 전공의 김모(31)씨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왔는데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전문의를 기다릴 수 있겠냐"며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적 진료가 필요한 환자라면 목숨이 달린 응급상황인 경우가 많아 더욱 심각하다.
현재는 필요한 경우 진료과에 상주하는 당직 레지던트 3·4년차가 응급환자를 진료했지만 이는 금지되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의 진료가 제한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은 "병원 밖에 있는 전문의를 호출해야 하고 전문의가 호출에 응하지 않을 때 처벌이 따른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해 응급실에서는 오히려 전문의 호출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가급적 응급실 인력만으로 해결하거나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는 의료계의 의견에 밀려 시행규칙 개정안이 후퇴한 결과다. 애초에 보건복지부는 당직 의사 범위를 '전문의 및 3ㆍ4년차 레지던트 이상'으로 입법예고했지만 업무가 과중된다는 전공의협의회의 반발로 '전문의'로 바꾸었고, 이번엔 병원협회가 전문의 인력부족을 이유로 반대해 '병원 외 당직'을 허용했다. 조경애 고문은 "의료기관의 요구를 다 받아주느라 응급환자의 생명권은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국민이 제대로 된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당직 전문의가 호출에 응하는 시간한도를 정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본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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