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금융당국 간부와 식사를 하다가 그가 적용 받는 대출금리 수준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5%대 초반의 마이너스대출을 쓰고 있었다. 현재 은행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7.9% 수준이니 상당한 우대금리를 적용 받는 셈이다. 연봉 차이가 크지 않은 필자에 비해 4%포인트 가까이 낮을뿐더러 모 시중은행 직원들의 마이너스대출 금리 6%와 비교해도 파격적이다. 온갖 공과금을 이체해 놓은 월급통장에 마이너스대출을 설정한데다 연금저축 정기예금 등에도 가입한 '우수고객'인데, 내 금리는 과연 공정하게 책정된 걸까.
직장인 상당수는 마이너스대출 통장을 이용한다. 소액의 생활자금이 부족할 때 한도 내에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씩 바뀌는 금리 결정 과정에 시중금리 흐름이나 개인 신용도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대출기한이 도래하면 은행 콜센터 직원이 전화해 일방적으로 조정된 대출금리를 통보해온다. 담보 없이 신용으로 빌려주는 것만도 감사하라는 투다. 더욱이 금리가 내릴 때는 '찔끔' 내려주고 금리 인상기엔 1~2%포인트 '왕창' 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수년 전 정부과천청사에 출입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청사에 입주한 농협 창구에서 타행 송금을 의뢰했는데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농협과 거래한 적이 없어 웬 떡이냐 싶었는데, 직원은 "모든 청사 근무자들에게 무료로 해주고 있다"고 했다. 얼마 뒤 청사 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했는데 역시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자 농협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시중은행의 환전 이벤트도 50% 정도 할인해주는 게 고작이었는데, 조건 없이 환전 수수료를 70% 깎아줄 테니 이용하란다.
돈 몇 푼이 아쉬운 서민들에겐 600~3,000원 정도인 은행 수수료도 상당한 부담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우량고객이 돼 수수료 혜택을 받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게 현실이다. 일반인은 오랜 기간 은행과 거래하며 신뢰를 쌓아야만 수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로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수수료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공무원의 권한을 의식한 과도한 특혜로밖에 볼 수 없다. 소득이나 연체율 등과 무관하게 특정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과 전혀 관련 없는 오만 가지 특혜를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액 자산가와 공무원 등 기득권층을 우대하고 서민들을 홀대하는 금융권의 약탈적 관행은 최근 감사원의 금융권 감독실태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신한은행은 고객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비싼 대출이자를 물리거나 아예 대출을 거절해왔다. 대다수 시중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임의로 올려 매년 수조 원 대의 천문학적인 추가 이익도 챙겼다.
다른 금융회사도 은행에 뒤지지 않는다. 카드사들은 불과 수백 명 정도인 VVIP카드 회원에게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느라 매년 수십억 원씩의 손실을 감수한다. 그러면서도 수천억 원의 순익을 내고 있으니, 부유층에게 과도한 혜택을 베풀고 그 손실은 서민들이 낸 카드론 이자 등으로 메우는 것이다. 사고 위험이 높을수록 더욱 필요한 게 보험인데, 보험사들은 국회의원 변호사 등 고액 연봉자의 보험료를 싸게 책정하고 절실하게 보험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겐 비싼 보험료를 받고 있다.
금융회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인 이상 일정 부분 수익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금융업은 국가와 국민이 허가해준 라이선스로 운영되는 특수한 비즈니스다. 일반 제조업보다 더 많은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하는 금융이 돈 벌이에만 매달리면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다.
마침 우리은행 임직원들이 지난주 '참금융 실천결의대회'를 열고 부당한 금리나 수수료 부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평등한 금융서비스 제공을 거부하기로 다짐했다. 1회성 구호에 그치지 않고 금융권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민들과 영세기업에 한 푼이라도 싼 자금을 공급하는 착한 은행, 소나기 올 때 우산을 펴주는 따뜻한 은행만이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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