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대형마트. 휴가철이면 많이 팔리는 은박접시 포장재에 '비닐류'라고 적힌 삼각형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포장재 분리배출을 유도하기 위해 고안된 분리배출표시다. 은박접시는 분리배출 의무대상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환경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이 도안을 부착할 수 있지만, 본지 확인결과 이 제조업체는 승인도 받지 않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다들 하니까 우리도 그냥 표기하고 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7월부터 본격시행 된 분리배출표시제가 애매한 분리배출 대상 기준 등으로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할 뿐 시행자체가 겉돌고 있다. 더욱이 단속의 실효성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환경부는 뒤늦게 보완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제조업체들은 '현장이 빠진 탁상행정'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재활용 촉진을 위해 2003년 도입된 분리배출표시제는 한글을 쓰고 도안을 간소화하는 내용으로 2010년 10월 관련 지침이 개정됐다. 새 지침은 지난해 1월부터 적용됐지만 유예기간 1년 6개월이 부여됐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지난 5월 이 같은 지침을 어길 경우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각 지자체에는 실태조사나 단속 공문이 시달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조업체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환경부는 오히려 기존 포장재 연장사용 신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1차 연장기간은 1년이지만 사정에 따라 더 쓸 수 있어 사실상 새 분리배출표시는 무력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제조업체들은 시작부터 분리배출 대상품목 기준과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성토한다. 일례로 포장재 종류(A)와 포장 대상품목(B)에 모두 해당돼야 분리배출표시 의무대상이지만 대상품목의 기준이 애매해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음식료품류나 의약품 등은 전체가 포함된 반면, 주방용품 중에서는 고무장갑만 들어있다. 종이제품은 휴지 같은 '위생용 종이제품'으로 한정됐고, 구매빈도가 높은 사무용품은 제외됐다. 종이는 의무대상이 아니라 따로 지정신청을 한 뒤 승인을 받아야 분리배출표시를 쓸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무대상이 아닌 1회 용품, 주방기구, 청소용품, 자동차용품 등은 불리배출 표시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승인 없이 표기하면 불법이라 이중 대다수는 과태료 대상인 셈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49)씨는 "똑같은 비닐이고 종이인데 내용물에 따라 재활용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애매한 규정에 맞추기 위해 수천 만원을 들여 포장재를 바꾼 우리 같은 회사들만 바보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김창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