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은 유대인이 잊지 못하는 성전 파괴일(티샤 베아브)이다. 이스라엘인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는 이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좋아할 말을 쏟아냈다. 특히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이스라엘은 이란 위협에 맞서는 자위권을 지니고 있다는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롬니가 집권할 경우 미국의 이스라엘 대사관은 현재의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 또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한다면 사실상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허용하겠다는 뜻이 된다. 롬니의 선임 외교 보좌관 댄 세너는 "이스라엘이 이란 조치를 취할 경우 롬니는 그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좀 더 노골적으로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 이란 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자제시키는 것과 정반대다.
롬니는 나아가 "미국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라며,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미국이 지지할 것을 시사했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최고 지도자가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하는 걸 막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며 오랜 친구인 롬니의 말에 답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인연을 맺은 후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미국 언론은 롬니의 발언이 미국 내 유대 유권자를 향해 강경 이란 정책을 약속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롬니는 성전 파괴로 생겨난 예루살렘 서쪽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롬니, 오바마를 이겨라'는 구호가 튀어나오는 등 통곡의 벽이 엄숙한 자리가 아니라 선거집회 장소 같았다고 뉴욕타임스가 분위기를 전했다.
유대계가 선거자금 모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상징하듯 롬니의 이번 이스라엘 방문에는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 등 미국의 친공화당 유대계 인사가 대거 동행했다.
미 언론들은 롬니가 이스라엘 방문에서 유대계 미국인들로부터 약 10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거두는 등 아서 영국 방문을 포함해 총 300만달러 이상을 모금하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롬니는 30일 마지막 방문지인 폴란드로 향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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