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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 안의 안철수, 우리 안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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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 안의 안철수, 우리 안의 이명박

입력
2012.07.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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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폄훼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교수는 변화에 대한 절실한 열망을 대중이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앞으로 얼마간 정치 구도는 '안철수 대 나머지' 또는 안철수를 상징으로 한 '미래' 대 이런저런 주자들의 '과거'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안 교수를 지지하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 한다. 하나는 그가 선하고 겸손하며 '바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현재의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자들이 표상하는 바와 반대되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지난 5년 간 우리는 사기꾼형 내지는 범법자형 인물이 법과 국민 위에 뻔뻔하게 군림하는 것을 하도 지겹도록 봐와서, 그야말로 '도덕'을 정치에 새롭게 요청하게 됐다. 제도나 법보다 개인의 윤리성이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이 실증해보여줬다. 적어도 지금까지 안 교수는 그런 '도덕 정치'의 회복에 어울리는 인물로 돼 있다.

또다른 안철수 열풍의 이유는 현 정권 하의 끔찍한 퇴행과 부조리를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초부터 집권당은 뭔가 바꾸는 척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현정권 5년에 덧보태어질 미래의 5년이 또다른 복고와 특권사회의 반복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결코 걷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안 교수를 통해 희망을 갖고 소위 '대세'를 상대화하는 것만으로 그는 지지를 받을만한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라는 대통령 후보는 과연 새로운 캐릭터인가. 일면 그렇고 일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안 교수는 '의사형 지도자'라는 점에서는 이제까지 없던 대통령 후보임에 확실하다. 그는 실제 의사 출신일 뿐 아니라 바이러스를 고치는 보안기업의 CEO였으며 청년 세대의 불안을 치유하는 멘토로 활약했다. '의사형 대통령'을 바란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병이 꽤 깊고 뭔가 고칠 게 많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반증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는 그리 크게 새롭지 않다. 그는 전형적으로 성공한 '기업가'이자 초엘리트이다. 왜 이번에도 우리는 기업가를 대통령으로 원하는가. 안 교수는 단순히 기업가만은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 심지어 이명박도 맨손으로 성공한 기업가에 안 해본 게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바로 이런 견지에서, 안 교수에게 투사되는 우리 열망 자체가 전혀 새롭지 않은 면을 가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마도 공동선에 대한 새로운 열망이 안 교수 같은 후보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아직 안철수 라는 후보가 모호하고 반쪽짜리인 것처럼, 선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불철저하다.

기실 이명박 정권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속의 이명박들은 누구나 강남에 살기를 원하고 자식이 명문대에 가기를 원하며, 4대강이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하고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 욕망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이명박정권이 낱낱이 보여줬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자신의 욕망은 그런 데서 별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날 안철수라는 상징은 또다른 우리 욕망의 모호한 거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스펙을 갖고 있고,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지도, 할 수도 없었던 사람. 자기 자식이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그런 존재의 통치를 받고 싶다는 것. 그 사람의 통치는 마치 통치가 아니라, '치유'나 '멘토링'일 것 같다는 환상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건설회사 사장한테 통치 받고 싶다는 욕망에 비하면 이 욕망은 상당히 고상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그건 어쩌면 더 위험한 욕망일 수도 있겠다.

우리 안의 이명박이 살아 숨쉬는 한, 철수 아니라 영희와 태권 브이가 다 같이 온다 해도 우리는 새 시대를 맞을 수도 없을 것이다. 병의 치료가 유능한 의사와 적절한 처방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유 의지가 관건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우리는 단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니라, 복잡한 욕망과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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