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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59> 양정모, 건국 후 올림픽 첫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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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59> 양정모, 건국 후 올림픽 첫 금메달

입력
2012.07.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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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전국이 35도를 넘는 찜통 더위가 계속됐고 비마저 내리지 않아 농민들은 갈라진 논바닥마냥 애가 탔다. 8월 1일 일요일 아침, 멀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한국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경기 실황을 중계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감격과 흥분으로 떨렸다. 신문이 발행되지 않던 일요일이라 호외가 뿌려졌고 조간으로 발행되던 한국일보는 이튿날 총 8개면 중 무려 6개 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전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숙원은 대회 참가 28년 만에 풀렸다. 양정모선수의 금메달 쟁취 소식은 마치 광복과도 같은 감격과 흥분의 밀물을 전국에 몰아왔다. 자랑스런 태극기가 몬트리올 하늘에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민 모두는 감격에 복받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피서지에서 감격과 환희가 해일처럼 일렁거렸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가 그 날의 흥분과 감동을 짐작하게 한다.

그 날부터 가뭄으로 목타던 대지에 전국적으로 단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양정모는 76년 8월 1일 오전 9시 27분 몬트리올 모리스 리처드 경기장에서 열린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 결승리그 1차전에서 미국의 신예 진 데이비스를 맞아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어 2라운드 2분 54초 만에 되치기에 이은 옆 누르기로 폴 승을 거뒀다. 이어 숙적이었던 몽골의 오이도프를 만나 3라운드 한 때 8-6으로 앞서다 결국 10-8로 뒤져 판정패를 당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푹 숙인 오이도프 대신 양 선수의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당시의 경기 방식에 따라 벌점이 없던 양 선수가 오이도프에게 폴 패를 당하거나 5점 차 이상 뒤지지 않으면 금메달이 확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48년, 태극기를 달고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래 28년 만에 첫 금메달을 따냈고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13개나 수확하며 종합 7위로 도약했다. 복싱 레슬링 등 80년 대까지 강세를 보이던 투기 종목이 퇴조한 대신 수영과 사격, 역도 등 메달 종목이 변화를 보이고 있고 양궁과 태권도는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양정모 선수는 2회 연속 금메달을 꿈꿨지만 냉전 시대이던 80년 반쪽으로 치러진 모스크바 올림픽에 우리나라가 불참하는 바람에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2012런던올림픽 특별대책위원장을 맡으며 한국의 100번째 금메달이 레슬링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서 36년 전의 감격을 다시 되새겨 본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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