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해병대 상륙지원단 소속 이찬우(37) 대위는 평일보다 주말이 더 바쁘다. 한 주라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 휴일 아침부터 찾아가 목욕을 시키고 매끼 식사를 돕는다. 설거지와 빨래, 방 청소 실력은 일찌감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어디 이 뿐인가. 이들이 병원에라도 가야 할 때면 운전기사가 되고, 보호자가 된다. 그는 "고마워 하시는 그 분들의 눈빛 한 번에 1주일 피로가 싹 날아간다"며 "봉사 활동을 다시 안 하고는 못 배긴다"고 했다.
이 대위는 자타 공인 '봉사에 미친'남자다. 한국장애인봉사협회 소속인 그가 22년 간 봉사 활동에 쏟아 부은 시간을 모두 더하면 8,000시간에 이른다. 22년 동안 매일 1시간씩 꾸준히 투자해야 만들 수 있는 기록이다. 권영오(59) 협회 사무국장은 "협회에 등록된 3,100여명의 자원봉사자 회원 가운데 봉사 시간이 8,000시간을 넘는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며 "그 중 5명이 50, 60대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 기록을 달성한 사람은 국내에 이 대위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던 지난 28일 오전 쌀과 반찬거리 등의 식료품을 두 손 가득 들고 대구 입석동 박순자(69ㆍ여)씨의 집을 찾은 것은 봉사 활동이라기보다 '가족 상봉'에 가까웠다. 그는 "박 할머니는 지적장애 1급인 손자 서영호(20)씨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한 달에 한 번은 찾아가 아들 노릇, 큰 형님 노릇을 하다 온다"며 "해병대 사관 97기로 임관하던 2002년에 첫 인연을 맺었으니까, 벌써 10년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위는 포항에서 대구까지 이백리 길을 온 김에 한 군데 더 들렀다. "인근 신천동에 있는 질라라비 장애인 야간학교에요. 학창 시절엔 봉사 활동하러 이틀이 멀다 하고 가던 곳인데, 해병대 장교가 된 뒤부터 주말밖에 못 찾아 많이 미안한 곳이죠. 그래서 학용품 좀 전달하고 왔습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 대위의 선행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언덕길에서 끙끙대던 휠체어 한번 밀어주면서 시작됐다. "당시 길에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더라고요. 갈 길이 바빴지만 휠체어를 밀어 집까지 모셔다 드렸죠. 어찌나 고마워하시는지 그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아 그 길로 봉사협회에 가입했죠." 이게 22년 전의 일이다.
이 대위의 이 같은 왕성한 봉사 활동에 지역 단체는 감사패와 상으로 화답했다. 봉사 시간 7,000시간을 넘기던 2009년에는 포항시장에게서도 상을 받으면서 지역 사회에서 그는 '군복 입은 천사'로 불릴 정도가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모두 가족 덕분이라고 했다. "두 딸(6, 3세)의 아버지로서 주말마다 벌이는'외도'에 가만 있을 세상의 아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젠 아내가 저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땐 저를 따라 나오려고 할 정돕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