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식구들이 동이 어멈 또는 기껏해야 작은어머니라고 부르더니 이제 어머니라고 마음 놓고 부르니 그 또한 가슴 저리는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어디가 아프시냐?
옹저증(癰疽症)이 심해져 미음도 간신히 넘기시니 얼마 못 사실 겁니다. 저하고 집에 가십시다. 형수도 곧 출산이 낼모레요.
내가 기왕에 세상의 경난(經難)을 배우려고 집을 떠났으니 어찌 일 년도 못 되어 돌아가겠느냐?
이신통은 송우경을 데리고 애오개 주막으로 가서 함께 지냈다. 그는 아우나 다름없는 우경에게 자기가 한양에서 보냈던 저간의 일들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던 것이다. 송 생은 일단 그와 동행하여 낙향하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찾으리라 작정하고는 열흘 만에 보은으로 돌아갔다. 이신통은 이듬해 봄이 오기까지 한양에 있었으나 그 이후에 송우경이 다시 찾아왔을 때에는 이미 행방이 묘연했다.
4. 부평초 하얀 꽃
나는 무주를 거쳐 신통의 고향인 보은에 다녀온 뒤에 엄마에게는 그가 훨씬 전에 혼인을 하여 딸까지 낳았더라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그 말까지 했더라면 엄마는 나도 시집갔다가 스스로 소박을 자청하여 파경한 전말은 잊고서 이 서방을 두고두고 원망하겠기 때문이었다. 그냥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리려고 그의 누이를 만난 일과 제사 때마다 친정으로 생각하고 오라고 했던 말만 전해 드렸다. 엄마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중얼거렸다.
이 서방은 못 만났지만 너를 그 집 식구로 받아들인 셈이니 조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래 이제 그 녀석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올 때까지 기다려두 되겠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것만은 순순히 넘어갈 수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소식이 있으면 어디로든 찾아가볼 생각이우. 길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팔월 말에 돌아온 뒤 시월 입동이 금방 찾아와서 어염 장사는 이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고 안 서방은 강경의 상단 사람들과 대를 묶어 행상을 떠났다. 그가 이번에는 남도 쪽으로 향하였는데 첫눈 내린 날에 전주 거쳐서 돌아왔다. 그는 며칠 동안은 입을 닫고 있다가 내가 앞채 부엌방에서 찬모와 푸성귀를 다듬고 있는데 툇마루에 앉더니 슬쩍 말을 꺼냈다.
이번에 장사 나갔다가 우연히 박돌이란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구먼요.
요즈음도 광대 물주로 나다닙디까?
예, 여전하더군요. 잠깐 저 좀 보시지요.
나는 눈치를 채고 그를 따라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는 마당을 돌아 광 앞에 서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말했다.
박 서방이 사실은 아씨가 마음 상할까 하여 말하지 않고 있었으나 신통이 서방님께 여인이 있었다구 합디다. 그것두 한양에서부터 알던 여인이라는데 지금은 유명 짜한 소리꾼이 되었다지요.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송 의원에게서 그가 애오개 주점에 있을 때에 보니 애오개와 칠패의 놀이패들과 어울렸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고, 아마도 이신통이 광대들과 어울려 한양을 떠난 것도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여인이 지금 어디 사는데요?
이름이 백화(白花)라고 하는데 전라도 부안에 살 거라구 합디다.
아직은 엄동설한도 아니고 동지 전까지는 나들이하기에 좋은 철이라 나는 안 서방의 말을 듣자 마자 대번에 길을 떠날 생각으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먼길을 다녀온 막음이 아부지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떨까요?
저야 아씨께서 가보시겠다면 내일 당장이라두 좋습니다. 다만 주인마님께서 걱정하실까 염려될 뿐입니다.
전주에 아직두 박돌 아저씨가 있을라나?
모르죠. 하두 천지사방으로 싸돌아댕기는 위인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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