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의 '피디수첩'은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국민과학자'였던 황우석씨가 실험내용을 조작했다는 것을 밝히고 광주 장애인학교에서 교직원이 장애청소년을 성폭행한 '도가니'사건을 다뤘으며 검사 스폰서, 해군 군납비리, 4대강 살리기의 허구 등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가장 먼저 터뜨렸다.
피디수첩은 그러나 이름대로 피디들만의 힘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피디와 탐사전문작가들이 한 팀이 되어서 만들어왔다. 문화방송은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후 생긴 지 22년 된 이 프로그램의 간판 피디들을 취재영역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보내거나 해고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또다른 축인 작가들을 23일 전원 해고했다. 해고통보를 받은 피디수첩의 작가 6명 가운데 가장 연장자며 피디수첩에서만 12년을 작가로 일해 이 분야 최장수 작가이기도 한 정재홍(45)씨를 만났다.
_정확히 해고 통보는 언제 받았어요?
"금요일(20일)에 우리 방송 리서처로 일하다가 타방송에서 작가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거기 작가가 피디수첩 작가로 간다면서 어떻게 된거냐고. 월요일에 배영규 팀장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확정된 것이라며 국장은 저희를 만나볼 생각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가들이 다 같이 (윤길용 시사교양) 국장실로 가서 국장을 만났습니다. 왜 자르냐니까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그런다, 해촉되는 순간 거리로 나앉는 비정규직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방법은 사과한다, 그러나 결정은 어쩔 수 없다고 해요. 제가 연차도 높고 파업지지 성명도 썼고 또 4대강과 민간인사찰을 다룬 작가는 안된다 그래서 후배랑 나랑 둘은 자를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다 잘랐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프로그램은 방송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피디수첩 작가들이 사람을 키워온 노하우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거잖아요."
_어떡하다 방송작가가 됐어요?
"대학교(고려대 국문과)때 학생운동을 했어요. 88년 7월에 전두환 대통령 사저에 체포결사대라고 여섯명이 갔어요. 그때는 구속되면 집행유예나 1년 정도 실형 살면 군대가 면제가 돼요. 군대문제 해결되면 노동현장이나 문화현장으로 가려고 4학년 되면 구속을 각오하고 가는 거지요. 사제폭탄 같은 거 터뜨려서 전경도 다쳤고 당연히 실형을 예상했는데 갑자기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면서 양심수를 석방해버린 거에요.(웃음) 결국 군에 끌려가서 27개월 복무했어요. 제대하자마자 구로동에 있는 노동자종합학교에 갔어요. 거기서 1년 정도를 있어도 사람들이랑 잘 안 어울렸어요. 연회비가 40만원인데 그것도 벅차고. 고민하다가 학교로 돌아갔어요. 92년도에 학교를 졸업하고 글쓰는 일을 계속 하는데 95년에 누가 예능작가가 돈을 많이 번다면서 엠비씨 '테마게임'이라는 프로에 원고를 두 개 써보면 자기가 연결을 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_그런데 왜 돈 덜 되는 시사로 옮겼어요?
"탐사프로 작가들이 다들 그래요. 사회를 변혁시키고 싶다. 내가 쓴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1년 정도 예능을 했는데 시사국에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라는 프로가 있어요. '테마게임'이 드라마타이즈한 개그인데 이건 드라마타이즈한 시사거든요. 그걸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저한테 시켰어요. 97년에는 IMF시대 사람들한테 용기를 준다고 만든 '성공시대'라는 다큐멘터리를 했고요. 99년쯤에 피디수첩에서 몇 개를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시켜보고 잘하면 데려가는 거지요. 피디수첩이라면 시사작가라면 누구나 꼭 가고 싶은 프로였어요."
_잘했어요?
"영아돌연사를 다뤘는데 잘 못했어요. 영아 세 명이 백신을 맞고 죽었는데 이게 밝혀지면 예방접종 자체를 안하려고 할 테니까 식약청에서는 감추려고 했어요. 보통 같은 로트 번호에서 1만 개 정도 백신이 나오는데 분명 그 로트 번호는 (문제가 되어서) 회수됐다는 말을 녹십자에서 들었는데도 식약청 담당자는 요리조리 돌리면서 절대로 인정을 안해요. 결국 원고도 완성을 못해서 피디가 마무리를 했어요. 시사 아이템은 한 군데가 다루면 다른 데서는 안 다루거든요. 그?歐?다룰 때는 정말 제대로 파헤쳐주지 않으면 (피해자들한테) 죄를 짓는 것인데 그걸 못했으니까 자괴감에 엄청 빠졌지요.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요. 그런데도 피디수첩에서 불러줘서 2000년부터 함께 하게 됐어요."
_피디수첩을 전담하는 작가가 되면서 뭐가 달라졌어요?
"이 프로는 할 때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다치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은 것 하나도 일일이 확인해나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지금은 피디가 8명, 작가가 6명(2명은 10분짜리 생생정보 전담), 리서처가 8명이라서 4주에 하나를 하는데 그때는 피디는 8명인데 작가는 2명이라서 격주로 했어요. 1번 피디랑 방송을 준비하면서 2번 피디랑 아이템 회의를 하고 3번 피디랑 촬영이야기를 하고 4번 피디가 촬영본 갖고 오면 밀리는 식으로 정신없이 일을 했어요."
_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피디와 작가의 업무는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아이템 잡고 취재방향 설정하는 건 같이 해요. 아이템을 정하면 기본적인 취재는 작가 피디 리서처가 같이 해요. 현장에서 촬영하는 건 피디가 하는 거지요. 이 테이프를 갖고 편집구성안을 짜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 몫이에요. 100편의 테이프를 갖고 50분, 55분짜리로 구성하는 겁니다. 다시 구성안에 의하여 화면 붙이고 인터뷰 붙이는 건 피디 몫이고 그걸로 다시 작가가 대본을 씁니다. 나레이션 대본과 스튜디오 대본을 쓰는 거지요. 그래서 나레이션 녹음하고 스튜디오 녹화하고 다시 피디가 자막 음악 음향효과 같은 것을 넣는 후반작업을 합니다."
_서로 관여하지 못하나요?
"작가와 피디 몫이 다릅니다. 2003년엔가 북핵 다룰 때 미국의 보수우익전문가 인터뷰를 해온 거를 보니까 북한이 계속해서 핵을 개발하면 '우리가 좌시하지 않겠다' 이 정도였는데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겠다'로 의역한 자막을 붙였어요. 이건 왜곡이잖아요. 안된다고 했지만 자막은 피디 소관이라 결국 그대로 나갔어요. 결국 다음날에 조선일보가 '선제공격'을 짚으며 프로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서 방송국이 발칵 뒤집혔어요. 그 피디와는 지금도 껄끄럽죠."
_피디랑 의견이 달라서 작가 의견 내세운 게 성사된 적도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 청송보호소 폐지 문제를 다룬 적이 있어요. 범죄 다 살고 또 보호감호소 가야 하는데 비인권적이잖아요. 당시 정동기(전 청와대 민정수석)씨가 법무부 교정국장이었어요. 뺀질이 스타일이라 인터뷰에는 계속 교정효과 있고요 어쩌고 하더니 인터뷰 끝나니까 끝났죠 하더니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는데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 그런 도둑놈들은 평생 풀어주지 말아야 해요. 그 새끼들은 풀려나면 또 도둑질 합니다'. 그게 다 녹화가 다 된 거에요. 당시 피디가 조능희 국장이었는데 제가 형, 이건 써야 됩니다 그랬어요. 이게 바로 우리 교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멘트다, 조능희 국장은 인터뷰 끝나고 한 거라고 반대하는데도 제가 주장해서 썼어요. 결국 이 방송으로 보호감호제가 폐기되는 계기가 됐는데 정동기가 소송을 걸어서 방송국이 패소했어요."
_그래서 제일 뜻깊은 작품은?
"최근에 '검사와 스폰서'가 기억나요. 이명박 정부 오면서 법의 공정성이 너무 무너져서 최승호 부장하고 법원과 검찰을 함께 다룰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검사 104명한테 성접대를 했다는 스폰서 제보가 온 거예요. 리서처한테 물어보니까 '이사람 미친 사람이에요' 그래요. 우리 프로그램의 모토가 있어요. 엄마가 딸한테 사랑한다 그래도 '엄마, 증거 있어요' 그래요. 리서처 보고 증거부터 물어보고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알아보니까 스폰서를 했다는 사람이 건설회사를 하고 한나라당 1대 경남도의원을 한 사람이에요. 성범죄는 쌍벌죄고 업소도 잡혀가기 때문에 정말 어렵게 여자를 찾았어요. 여성 증언은 한 명만 받았지만 상대 검사한테 전화했더니 '이제 제 인생 끝난 건가요' 그래요. 이걸로 나머지 103명에 대한 신빙성이 입증이 됐다 싶었어요. 방송 끝나고 파장은 엄청 났지요. 검찰개혁특위까지 만들어지고. 특검까지 임명됐는데 특별검사가 결국에는 다 뒤집었어요. 지하 룸살롱에서 위층 모텔로 간 것도 옷도 벗은 것도 맞는데 법적으로 공실이랍니다.(성관계는 없었다.) 결국 관련 검사 다 복권되고. 그들은 그래요. '너희들은 친구한테 밥 안 얻어먹니.'"
_다룬 거 중에 잘못했다 싶은 것도 있어요?
" '4대강 수심 6미터'는 파장이 엄청 컸는데 김재철씨가 불방 결정을 내리면서 커졌지 프로그램 자체는 아쉬움이 커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이 '강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실은 대운하가 만들어졌다'고 양심선언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면 4대강 문제가 완전히 뒤집어졌을텐데 그 분을 여러 차례 만나고 설득도 했는데 결국 카메라 앞에 세우는 데는 실패했어요."
_이 정부 들어서 유난히 피디수첩에 개입을 하는가요?
"작년에 롯데?취재하려고 했더니 회사에서 광고 떨어진다고 못하게 해요. 광고 떨어진다는 말,그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고요. 시청률을 요구한 적도 없어요. 배영규팀장한테 피디들이 왜 작가를 자르느냐고 물었더니 시청률이 낮다고 하더랍니다. 검사와 스폰서, 사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공정사회와 낙하산, 이런 거 다 10% 넘어갔어요. 제 후배가 했지만 김종익씨 민간인 사찰, 그것도 시청률이 10% 넘은 걸로 알고 있어요. 기무사 민간인 사찰,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윤길용 국장 오고 최승호 피디 등 다 비제작부서로 보내고 그 다음부터 아이템 통제에요. 김진숙씨 아이템, 제주 세븐원더스 모두 못하게 했어요. 남북 긴장 관계 때문에 사업 투자하고 망한 재미교포가 한국에 며칠 와서 취재하러 갔는데 즉시 돌아오라고 해서 거기에 반발했다고 이우환 피디를 드라마 세트장 관리하는 곳으로 보냈어요. 그래 놓고 강원도 산골에서 주민들이 보험회사 속여서 사기쳤다더라, 교장이 초등학생 성추행 했다더라. 그런 거 하래요. 그건 피디수첩이 안해도 법으로 제재를 받아요.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손대지 않는 걸 발굴하는 게 탐사보도인데 그걸 못하게 꽁꽁 묶어두고 있어요. 우리 고정층이 7% 있었는데 4% 로 내려가고 게시판에는 자폭하라는 욕투성이에요. 그래도 근근히 역량을 보존해왔는데 이제 그것도 다 버리라는 거잖아요."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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