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TV를 걷어차고 싶었던 국민이 적지 않았을 성싶다.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400fm 경기에 출전한 박태환 선수가 예선에서 조 1위로 터치패드를 두드린 순간을 똑똑히 봤는데도 전광판 순위표 맨 아래로 떠밀려 ‘실격’ 표시가 붙었다. 본인의 어리둥절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올림픽 2연패를 학수고대하던 국민들에게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언뜻 ‘부정 출발’인가 싶었지만 느린 영상을 뚫어지게 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온갖 의심을 불렀고, 한때‘중국 심판 관련’추측이 인터넷을 타고 돌았다.
나중에 실격 판정이 번복돼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도 박 선수의 마음고생이 결선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선에서 그가 300fm 구간까지 선두를 지키는 등 평소 기량을 아낌없이 발휘해 값진 은메달까지 땄는데도 아쉬움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실격 해프닝만 아니었으면’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해프닝을 통해 우리가 얻어 낸 것도 작지 않다. 우선 국제수영연맹(FINA) 사상 25년 만의 ‘판정 번복’을 이끌어낸 즉각적이고도 차분한 대응이 눈에 띈다. 실격 판정 직후 안종택 경영(競泳) 대표팀 감독이 낸 이의신청은 심판회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수영연맹(FINA) 기술위원회에 2차 이의신청을 한 결과 비디오 분석을 거쳐 최종적으로 판정을 번복시킬 수 있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일본계 미국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날린 악몽을 씻어내는 성과였다. 정당한 이의 제기라면 조직적이고 집요해야 함을 확인시켰다.
이 과정에서 선수나 코치, 감독의 거칠고 볼썽사나운 항의성 몸짓이나 듣기 거북한 언사가 펼쳐지지 않았던 ‘문화 성숙’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최대한 자제력을 보인 박 선수의 언행은 세계적 스타로서의 면모에 어긋남이 없었다. 쓸데없는 의심과 음모설에서 벗어나 한결 단단한 각오로 다음 경기에 나설 박 선수를 응원하자. 그런 또 한 단계의 성숙을 가져다 준 것만으로도 런던올림픽은 이미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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