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문제에 개입할 때는 뜻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미국이 실제로 지닌 능력의 한계를 고려하라. 갈등에 끼어들었다가 회피한다면 그 나라의 원래 갈등만큼이나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
이달 말 퇴임하는 라이언 크로커(63)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대사가 미국의 중동 정책에 쓴 소리를 냈다. 뉴욕타임스(NYT)가 28일 내보낸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정책 입안자들은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최근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잇따른 군사 개입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뒤 시리아 내전, 이란 핵무기 등 현안 앞에서 주춤하는 미 정부를 향해 따끔한 충고를 한 셈이다.
크로커 대사는 아프간ㆍ파키스탄ㆍ이라크 대사를 역임하는 등 공직 생활 38년의 대부분을 아랍에서 보낸 미국 외교계의 대표적 아랍 전문가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이란 공용어)에 능통하고 아랍 세계의 문제를 평생 천착한 그는 미국의 아랍 개입정책에 대단히 비관적이다. 가장 심각한 현안인 시리아 문제에 대해서는 "수니파 반군이 승리하면 현 집권층인 알라위파와 기독교인 등 시리아 소수파들이 끔찍한 시간을 겪을 것"이라며 "특히 무슬림 강경파가 정권을 잡는다면 이라크, 레바논에 심각한 종파 갈등이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이 시리아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며 공화당 등이 제기하는 군사 개입 방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크로커 대사는 "아랍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미국이 지닌 힘의 한계를 목도했고 미국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많은 나라의 적대감을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에 차량 폭탄 테러가 터져 미국인 17명 등 63명이 죽었을 때 그는 대사관 사무실에 있다가 잔해에 묻힌 동료의 시신을 찾아야 했다. 2001년에 이어 지난해 아프간 대사로 재부임한 뒤에는 대사관을 포위한 무장반군의 공격을 19시간 동안 견뎌야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계획에 대해 "이라크 사회가 종파ㆍ인종 갈등으로 분열되고 주변국까지 폭력적 상황에 끌어들일 것"이라며 정확한 전망을 담은 반대 보고서를 작성했던 크로커 대사는 개입 대상국에 대한 내재적이고 섬세한 이해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자기 영토 아닌 다른 이들의 땅에서 싸우는데 그것은 그들의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에 재부임해 악화된 관계를 수습하고 올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철수의 필수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협정 체결을 이끌어낸 비결을 소개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첫 부임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다시 부임해서 그를 만나 2009년 대통령 재선거 시비가 일어난 곤란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며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아프간인에게는 협박이 아닌 존경의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