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아침 일찍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시골 완행 버스 마냥 중간에 작은 공항 코츠브에 들러 40분을 쉬었다. 새 손님들을 태우고 나서야 알래스카 놈(Nome)이란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날씨가 나빠서 착륙이 어려울 것이라는 웅성거림이 들리자, 기장은 "착륙 가능성은 반반이고, 기름이 충분치 않으니 두세 번 착륙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돌아가겠다"는 안내 방송을 한다. 가지고 가는 장비, 돌아가면 묵을 숙소 등 여러 걱정에 마음이 졸여진다. 마음 졸인 비행 끝에 비행기는 검은 구름을 헤치고 놈의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지난 3년간 마음은 있었으나 오지 못했던 영구동토에 드디어 도착하는 순간이다.
영구동토란 토양의 온도가 2년 연속 0도 이하를 유지하는 지역을 말한다. 시베리아, 캐나다, 알래스카, 노르웨이 등 환북극 지역과 냉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지구본을 우리나라가 아닌, 북극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 면적의 광대함에 놀라게 된다. 실제로 영구동토 지역은 지구 전체 육상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1년의 3, 4개월의 여름을 제외하고는 땅 표면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 농사는 물론 다른 경제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간 이 버려졌던 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난 수 십 만 년간 쌓여서 만들어진 빙하 속의 정보가 옛 기후 정보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가장 크게 일어날 곳이 바로 북극 지역이기 때문이다. 만일 온도가 상승해 극지의 얼음이 녹아버리고 흙이 드러나면 이 지역이 태양빛을 반사하기 보단 흡수하게 되고, 지구 전체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온도 상승이 가져올 또 다른 현상이다. 영구동토 지역에서도 여름 몇 달 동안에는 표면이 녹아서 식물이 자라는 활성층이 수십 ㎝에서 수 m에 이르기도 하는데 추운 지역에 잘 적응한 작은 관목, 풀, 이끼류들이 상당히 자란다. 보통 우리가 사는 온대지역과 달리 영구동토 지역은 겨울이 되면 죽은 식물들이 바로 얼어서 분해되지 못하고 땅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먹다 남은 음식을 냉동실에 넣어서 얼려놓은 형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이렇게 쌓인 '유기물'의 양이 전 지구 토양에 있는 유기물 전체의 절반에 해당되며, 약 1,700×1015g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총량과 육상의 식물에 있는 탄소량 모두를 합친 것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문제는 온도가 상승하면 영구동토층에 안정적으로 쌓여있던 이런 유기물을 미생물이 빠른 속도로 분해해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얼려 놓은 음식을 냉장고 밖에 꺼내 놓으면 빠른 속도로 상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부터 과학학술지 <네이처> 등 국제적인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을 살펴보면 영구동토지역 호숫가가 급격히 녹으면서 메탄의 발생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거나, 또 메탄을 발생시키는 미생물이 온도 상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보고들이 뒤를 잇고 있다. 또, 약 5,500만 년 전쯤 지구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 지질학적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영구동토층이 급격히 녹으면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메탄 때문이라는 것도 새로이 밝혀졌다.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영구동토지역이 기후변화의 시금석이자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네이처>
이런 이유로 한국도 이 영구동토 지역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번 여행이 가능했던 것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의 이방용 박사 연구팀이 진행하고 있는 극지 연구에 공동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착한 연구지에서는 연세대 채남이 박사를 비롯해서 함께 참여하고 있는 기업 웨더텍의 장용문 팀장 등이 현장에서 어려운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다. 놈에서도 비포장도로를 2시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전기도 없는 오지에 플럭스 타워와 자동 챔버 등 영구동토에서 발생하는 온난화 기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첨단 장비들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다.
영구동토라고 했지만 한 여름의 경치는 북구 유럽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황새풀이라 부르는 하얀 솜 모양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밟으면 푹신푹신한 스패그넘 계열의 이끼들이 잔뜩 자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땅을 조금만 파보면 이곳이 영구동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단단히 얼어버린 초코 아이스크림처럼 시커먼 유기물 얼음 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한 여름이라 작업하기에 그리 낮은 온도는 아니지만 주위에 왱왱거리는 모기 뿐 아니라, 하루 종일 환히 해가 지지 않는 탓에 밤 8, 9시까지 시간을 잊고 고되게 일하기 일쑤였다. 나는 놈에 도착한 1일부터 6일까지 일주일간 오존층 파괴로 인해 자외선이 증가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실험과 영구동토 지역의 습지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의 양을 실측하고 이에 관여하는 토양의 미생물 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곳 땅 끝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들었다.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식의 지나친 과학국가주의에는 반대이지만, 어쨌든 극지연구는 한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활동이 되었다. 이런 오지 연구를 가능케 해준 국민들의 지원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 2,500명의 작은 도시 놈에 있는 7, 8개의 식당 중 6개는 모두 한국인이 사장으로 사업을 할 정도로 한국은 이곳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각종 자격시험에 매달리면서 꿈도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오지까지 나와서 연구도 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상상도 해본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영구동토층이 녹을 것이라는 추론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엄밀한 측정과 설명을 통해 이를 증명하는 건 과학자들이 할 일이다. 이곳에서의 연구를 통해서 2, 3년 후에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물론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더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이 연구에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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