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40도를 넘는 폭염도, 인내심을 시험하는 교통체증도 팬들의 열망을 막진 못했다. 영국 록의 자존심 라디오헤드와 한국 록의 전설 들국화. 두 밴드가 잇따라 무대에 선 올해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은 한국 록음악사의 작은 '사건'이었다.
27일부터 29일까지 경기 이천시 지산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이어진 올해 록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데뷔 20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은 라디오헤드였다. 올해 이들을 보러 온 관객은 대략 3만 5,000여명. 지난해보다 1만 4,000여 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헤드라이너(대표 가수)로 초대된 그들의 27일 밤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은 더위를 식혀주던 밤바람마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통로를 꽉 메워버렸다.
공연은 잘 짜인 2시간짜리 종합 예술 같았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무대 위 모습을 잘게 쪼개 보여주는 12개의 영상과 결합해 보기 드문 예술적 체험을 선사했다. 실험성이 강한 최근작을 중심으로 시작했다가 천천히 과거의 익숙한 곡들로 거슬러 가는 몰입의 기승전결도 흠잡을 데 없었다. 지난해 발매된 앨범 수록곡 'Lotus Flower'로 시작한 라디오헤드는 'Karma Police' 'Exit Music'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그리고 네 번에 걸친 앙코르의 마지막 곡 'Paranoid Android'까지 130분 동안 25곡을 쏟아냈다.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Creep'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들의 예술적인 성취와 대중적인 매력이 최상의 조화를 이뤘던 시절(1995~2000) 음악만으로 공연은 절정에 이르기에 충분했다. 흐느적거리는 춤으로 무아지경을 연출한 톰 요크 만큼이나 짜릿한 희열이 관객들을 감쌌다.
이날 저녁 앞서 무대에 등장한 들국화는 보컬리스트 전인권의 "반갑다"는 짧은 인사 한 마디로 공연을 시작했다. 1시간 동안 대표곡 7곡과 올드 팝 2곡을 선보인 공연은 첫 인사처럼 짧고도 굵었다. '행진'을 시작으로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사랑한 후에' '제발' '사노라면' 등 이어지는 히트곡들에 청중은 환호하다 전율했다.
7일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 부산 공연에 이어 록페스티벌에 참여한 들국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전인권과 최성원의 목소리는 풍화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명곡의 정수를 전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주찬권의 파워풀한 드럼도 손색이 없었다. 20, 30대가 주류인 여느 해 록 페스티벌 풍경과 달리 이날 관객은 연령층이 다양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 청춘부터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중년까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했다. 전인권이 말했다. "나이 먹는 거 걱정하지 마. 먹어 보니 별 거 없어. 더 좋으니까."
한국과 영국의 두 전설이 합작한, 잊을 수 없는 한 여름 밤의 축제였다.
이천=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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