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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霧津에서 만난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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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霧津에서 만난 김승옥

입력
2012.07.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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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에는 비슷한 대목이 참 많습니다. 우선 두 작가의 서술방식이 과거에의 회상, 그 중에도 특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절실했던 젊은 날의 애욕을 기저에 뒀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 의 주인공 허생원은 옷 벗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환했던달밤, 달빛을 피해 옷 벗으려 물레방아에 들어섰다가 거기서 그 봉평 마을의 규수를 만나 쉽게 일을 저지릅니다. 남녀는 일을 치룬 후 그 마을을 떠납니다.

<무진기행> 의 주인공 역시 고향에 내려왔다가 그곳 시골학교 음악선생을 만나 젊은 시절 수음만 일삼던 바닷가 자취방으로 그녀를 유인, '칼을 빼앗지 않으면 흡사 자신을 찌르려 듯' 설쳐대는 그녀를 너무도 쉽게 빼앗은 후 역시 그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을 끝냅니다. 둘 다 애욕의 신비성을 다룬 소설입니다. 그러나 두 소설이 가장 비슷한 점은 작가 둘 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메밀꽃 필 무렵> 의 무대가 이효석이 태어난 고향 강원 봉평이라는 건 누구나 잘 압니다. 무진(霧津)은 대한민국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지명입니다만,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무진이 바로 김승옥이 거기서 고교까지 졸업한, 바로 그 순천(順天)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빼어난 소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빼어난 고향을 둬야 합니다. 작가란 그 고향을 스토리에 기승전결 시키는 한갓 조작사(오퍼레이터)에 불과할 뿐입니다. 두 작품 공히 작가의 고향과 일치하다보니 그 고향의 특산물 역시 소설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달밤 작가의 표현대로 "소금을 뿌린 듯" 환한 봉평의 달밤 메밀꽃이 소설의 주조를 이뤘듯, 그래서 마침내 달밤 특유의 광기를 작출 해냈듯, <무진기행> 의 안개 역시 작가 김승옥이 열불 날 정도로 지져먹고 데쳐 먹는 소설의 모멘텀이 되고 있습니다. 전북 정읍의 내장사를 둘러 본 후 내친 김에 광주에 도착, 거기서 밤늦게 순천행 고속버스에 올라 포구에 들어설 무렵 저 역시 예의 안개를 만났습니다. 고속버스 차창을 향해 밀려드는, 작가의 표현대로 '원귀의 입김 같은' 그 안개를 쐬며 저는 절필작가로 바뀐 그 김승옥이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그 소원이 또한 너무 쉽게 이뤄진데 대해서도 놀랐습니다. 순천엔 안개 말고도 갈대가 유명했습니다. 갈대 페스티벌이 한참 열리고 있는 바닷가 갈대밭에 들렸을 때, 거기 '무진기행 체험기'라 쓴 간판 뒷켠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던 김승옥을 볼 수 있었지요. "거 혹시 김승옥 선생 아니오?" 내 목소리에 그 역시 깜짝 놀라더니 제 손바닥에 '뇌'자를 적어 보이더이다. 뇌졸증을 일으켜 언어 마비가 왔다는 얘기였습니다. 말 알아듣는 데는 하등 불편이 없었고요.

"김승옥씨, 무진이라는 데가 어디요? 바로 이곳 순천이지?" 내가 다그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김승옥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앉아있던 그 갈대밭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여인한테 손목 잡혀 끌려갔던 바람 불던 갈대 밭,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서울행 버스가 구르고 나서도 저는 한참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소설 말미에 나타나던 "당신은 지금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던 푯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야리꾸리하던 작가 김승옥의 소설기법상의 앵스투르멍이 됐던 안개도, 또 제가 정작 기다렸던 음악교사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요. 소설대로면 그녀 역시 언젠가 무진을 떠나도록 되어있는데….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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