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빛을 받아 산은 자주 빛으로 물들고 물이 맑은(山紫水明) 고장, 경기 양평. 그곳 서종면의 황순원 소나기마을에 강연이 있어 13일 정오를 좀 지난 시간에 북한강변을 따라 승용차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강의 지류 길가에 경찰차가 서 있고 두 사람의 경관이 막 물에서 사람을 건져내고 있었다. 필자와 운전자 두 사람은 얼른 달려 내려가 함께 거들었고, 두 경관은 15분에 이르도록 비지땀을 흘리며 익사 직전의 할머니에게 심폐소생술 처치를 했다. 그 현장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기로는, 정말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자기 가족인들 저보다 더 열렬할 수 있을까.
생사의 기로에서 이미 고개를 넘어갔던 할머니가 마침내 다시 숨을 토하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떠났으나, 그 두 경관의 희생적 사명감은 너무도 감동적으로 가슴에 남았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파출소에 들려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손용호 경위, 류섭영 경사, 두 분 모두 40대 장년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관이었다. 필자는 양평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그 '영웅적' 현장 참관기를 자세히 알려드렸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건강하고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싶어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라도 부를 심정이었다.
지난 주 신문에는 야간 순찰차량 경광등을 껐다 켰다 하는 점등 간격을 조절함으로써 범죄를 줄인 파출소 경찰관들의 창의적 미담이 실렸다. 박봉에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주야 없이 애쓰는 대다수의 경찰과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문제 경찰을 혼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찾아보기로 하면 이와 같은 공직자의 수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천안함 사건 때 함수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수중 구조작업을 하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그러한 사람이다.
유학의 정명주의(正名主義)로 일관했던 우리 선조 목민관들 가운데는 말할 것도 없다.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를 통해 어디에나 국민의 눈과 귀가 있음을 강조하고 청렴하게 살 것과 본연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사심 없이 업무를 처리하라고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시기의 실학자 순암 안정복도 충청도 목천현으로 부임하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정부패를 없애고 그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관리였다. 그는 백성들이 부담하는 부당한 비용을 없애기 위해 '방역전'이라는 재원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고, 검소하고 겸손한 처신으로 모범을 보였다.
그때 물에 빠졌던 할머니가 무슨 연류로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지 필자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필자가 보았던 것은, 그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생명을 살려낸 그 열혈의 정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지방 강연을 갔다가 당했던 낭패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속도로에서 밤중에 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순찰차의 두 젊은 경관이 스페어타이어 갈아 끼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필자 또한 우리 사회를 건실하게 작동하게 하는 힘의 조력을 받았다.
사마천의 에 목후이관(沐猴而冠)이란 말이 있다. 목욕을 한 원숭이가 관을 쓴다는 뜻인데, 의관은 아름다우나 그 내면의 마음은 사람의 것이 못 된다는 비유이다. 이는 한생(韓生)이 초나라 항우(項羽)를 조롱한 말로서, 그 뜻풀이를 듣고 격분한 항우가 한생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 삶아 죽이고 만다. 세태가 험악할수록 관 쓴 원숭이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횡행하는 터에, 무더운 여름날 한 줄기 청량한 소나기 같은 생명구조의 복무 수행에 현장 목격자가 된 복을 누렸다.
그 할머니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들었는데, 또 무슨 절박하고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옛말에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 했으니, 사람이 어디서 죽는다 해도 뼈를 묻을 만한 곳이 있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여러 모양의 손길이 함께 작동하는 것인데, 그 첫머리는 언제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맡은 바 직분을 다하는 이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 분명하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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