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몇몇 대목에서 좀 더 자랑스러운 역사였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지만 한국은 누가 보더라도 2차 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사례다. 증거를 대라면 이건 어떨까. 5,000만 이상의 인구에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넘는 경우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 7개국뿐이다. 불과 50년 전만하더라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먼 나라로만 생각했던 세계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더구나 잠재성장률이 아직 4% 수준이고 중국과 북한, 극동 러시아 지역과 같이 발전 잠재력이 매우 높은 동북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몸집을 더 불릴 수 있다.
대선에서는 대한민국의 이런 성공이 누구 때문이냐며 공 다툼이 한창이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다. 최근 정치권이 때 아닌 역사논쟁에 휘말린 사유는 대한민국의 모든 성공에 박정희의 마법이 작용한 것처럼 단순화하는 일각의 주장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박정희의 산업화로 중산층이 커졌고 이들이 민주화를 주도했기 때문에 민주화도 박정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4ㆍ19 이후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기여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외눈박이 평가가 오히려 대한민국 성공의 풍부한 얘깃거리와 역동성을 죽여 버리는 것은 아닐까. 민주화운동의 다이너미즘과 그 속을 뚫고나온 한국기업들의 역동성이 없었다면 박정희의 산업화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민주화세력의 끊임없는 도전 때문에 박정희는 실패할 겨를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한국모델을 박정희모델로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1980년대 말 등소평의 중국을 비롯한 구사회주의 체제전환 국가에게 한국모델은 안성맞춤의 성공사례였다. 박정희가 추구했던 권위주의 체제의 압축 성장전략은 이들의 입맛에 잘 맞았다. 이젠 그들의 입맛도 달라졌다. 박정희 산업화모델은 이미 중국모델로 대체됐다. 지금 그들이 궁금한 것은 민주화 이후의 사회통합이나 노동권 보장 이후의 기업 경쟁력 유지에 관한 것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조차 한국의 성공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혁명과 민간기업의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공적을 온전히 평가해야 하듯이 민간 기업인들의 이노베이션 능력을 크게 평가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정주영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화계획을 현실로 만들어 간 재계의 탁월한 리더였다. 당시의 창업세대들은 산업보국을 내걸며 말로라도 항상 국민경제와 함께 가고자 했다. 박정희와 정주영의 대척점에서 민주화 리더십의 불꽃을 댕긴 사람은 전태일이다. 1970년 전태일의 노동인권선언은 그 이후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으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의 보수진영이 아직도 박정희 환원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자신들을 위해서나 정치발전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미국 신보수정치의 상징인 레이건대통령은 86년 마틴 루터 킹기념일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했다. 개인 기념일로는 조지 워싱턴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였다. 한국의 보수에게 전태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김대중의 공은 또 무엇일까. 박정희 이후의 정치발전과 시장경제의 성과를 인정하고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 때만이 한국의 보수정치도 진화할 것이다. 박정희기념관처럼 전태일기념관이나 민주화기념관을 세운다면 국내외 관광객들은 어디에 더 몰릴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박정희만이 아니라 정주영과 전태일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바른 역사교육일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품격이 있는 선진국 대접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전태일의 스토리와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혁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를 넘어 정보화 혁명으로 더 큰 성공을 꿈꿔야 할 시기에 아직도 5ㆍ16과 유신의 성격 논쟁에 빠져있는 정치권은 정말 지루하고 진부하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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