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불 붙인‘아리랑’논쟁은 무분별한 아리랑 사업의 결과”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변종과 이종의 와류 속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요.”
문화재청 전문위원을 역임한 민요 연구가 이소라(69)씨는 갈수록 난삽해져 가는 아리랑적통 싸움에서 원류로 거슬러 갔다.
지난해 6월 중국 정부가 옌볜 지린성 조선족의 아리랑을 자국 무형유산 목록에 올린 뒤로아리랑은 또 다시 와류에 휩쓸리고 있다.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자 중국 네티즌들이 단오는 중국 고유 풍습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일도 있다.
이씨는 아리랑이 한국의 유산임을 입증하는 논거로 아리랑의 원형인 ‘산아지’가 섬진강 유역 태생임을 든다. 섬진강 유역 민중의 논 매는 소리 중 바탕 소리(후렴)인 “에야라 디야 나흐흐으아. 산아지로구나”라는 구절이 진도아리랑의 뼈대로 진화했다는 것. 보성, 여수 등지에서는 일할 때 이 가락에 적절히 가사를 붙여 후렴으로 사용했고, 더 나아가‘방아타령’이나 ‘양산도’등 경기 민요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아리랑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3기로 나눠 설명한다.
1기는 경복궁 중건 당시 고종이 일꾼들에게 부르게 해서 일어난 아리랑 붐이다. 의 저자 황현은 그를 두고 ‘새롭고도 풍성한 가락(新聲艶曲)’이라며 ‘아리랑타령(阿里娘打令)’이라고 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악보로 채록해 1896년 논문에 실은‘구조(舊調)아리랑’이 이것이다.
2기의 기점은 1926년, 아리랑을 주제곡으로 쓴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나온 해다. 이 아리랑은 여러 아리랑 중 가장 널리 퍼진 것이지만, 바이올린 연주자가 편곡한 신민요라는 태생적 한계가 따라 다닌다.
3기는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자국 무형유산으로 등록한 지난해 이후다. 이에 앞서 강원도는 1971년 ‘정선아리랑’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데 이어 2009년 문화재청에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했으나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니어서 계류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 6월, 정선아리랑을 남한 지역 다른 아리랑과 한데 묶어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지자체 중심의 무분별한 아리랑 사업이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이 이씨의 지적이다. 경북 지역의 예천아리랑 영천아리랑, 강원도 뗏목아리랑 등등 변종이 줄을 잇고, 1920~30년대 옛 민요집에 나오는 가사나 후렴구를 멋대로 떼 붙인 아리랑이 양산된 것은 ‘아리랑 붐’의 그늘이다.
이씨는“민요는 후렴이 요체”라고 강조한다. “매기는 가사는 즉흥적이지만 받음구(후렴)는 삶의 실제를 품는 패턴, 즉 민중의 역사죠.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이유예요.”
변형된 민요는 ‘둔갑 민요’다. “그런 곡이 대통령상까지 받는 현실은 창작이 아니라 왜곡이에요.”자기 지역의 민요를 제쳐두고 경기 민요만 냅다 부르는 민요 경창 대회에서 버젓이 재현되는 현실이다.
최근 모업체가 아리랑과 이벤트를 연계해 지역 아리랑을 양산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씨는 우리 문화를 유행 상품처럼 남용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있지도 않는 아리랑을 양산하지 마세요. 정 하려면 (‘아리랑’ 이름 팔지 말고) 신민요로 보급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현대 관현악 접목 등 다양하게 변형해도 좋고요.”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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