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강제 구금됐다가 114일만에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는 25일 "조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지난달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중국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는 데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이날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월28일까지 (한 달간)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조사받는 동안 물리적 압박과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중국 측은 가혹 행위에 대해 한국에서 함구할 것을 석방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단둥(丹東) 구치소로 이감된 후 조사의 70%가량은 가혹 행위에 대해 함구하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이뤄졌다"면서 "(당초) 재판 과정에서 가혹 행위에 대한 내용을 폭로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가혹 행위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면 중국 인권 문제로 관심이 집중돼 북한 인권 문제가 묻힐 것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강조한 뒤 가혹 행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11일 김씨에 대한 2차 영사 면담 때 가혹 행위에 대한 간략한 진술을 들었다"며 "다음 날 장신썬(张鑫森)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6차례에 걸쳐 중국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고 엄중하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중국은 일절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김씨 석방 후인 23일 중국에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며"가혹 행위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중국에 사과를 요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 대한 중국의 가혹 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외교 당국이 보다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씨는 체포 경위에 대해 "북한 보위부가 지목해 중국 당국이 잡으려고 석 달 정도 감시·미행했던 사람을 만난 직후 붙잡혔다"며 "이 인사는 함께 귀국한 3명 중 한 명으로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10명 정도가 일시에 검거된 것으로 보인다"고 북한 연루설을 제기했다.
김씨는 다만 "체포 이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중국 국가안전부가 3, 4일이 지나서야 알아본 것에 비춰 북한에서 나를 잡아 달라고 중국에 요청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3월 29일 유재길(44), 강신삼(42)씨와 중국 다롄(大連)의 한 호텔에서 회의를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검거됐다. 유씨는 근처 대학교 운동장, 강씨는 호텔에 남아있다가 붙잡혔다. 이상용(32)씨는 단둥의 자택에서 검거됐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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