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FTA 앞장섰다가 180도 선회… 낮은 대중성은 약점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정세균 후보는 스스로 '저평가 우량주'라고 칭한다. 당장의 지지율은 낮지만 대기업 임원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거치며 실물경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고, 당 대표를 세 번 역임하며 리더십을 검증 받은 후보라고 주장한다. 그를 지지하는 민주당 현역 의원이 25명에 이르는 것도 정 후보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같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대중성은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정 후보는 올해 4ㆍ11 총선에서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 위기를 맞았다. 또 산업자원부 장관으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앞장섰다가 정권이 바뀐 이후 부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것을 두고 '말 바꾸기'라는 비판도 받는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4ㆍ11 총선 직전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당선 이후 탈당)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새누리당은 정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거론했다. 정 후보가 2004년에 제출한 경희대 박사학위 논문('브랜드 이미지가 상품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정당 이미지와 후보자 이미지의 영향력을 중심으로')이 1991년 이모씨의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 '정치마케팅과 우리나라 정당의 이미지 형성에 관한 실증적 연구'와 98년 출간된 이종은 남서울대 교수의 저서 '정치광고와 선거전략론'의 일부를 무단 인용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정 후보의 논문 중 이론적 배경에 해당하는 13~14쪽, 38~42쪽은 이씨의 논문 8~11쪽, 27~33쪽의 내용에서 일부 표현을 수정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일치한다. 또 정 후보의 논문 17~18쪽에 나온 그림은 이 교수의 저서 85쪽과 180쪽의 그림과 유시하고, 일부 문장과 문단이 일치했다. 이에 정 후보 측은 "이 교수의 저서와 이씨의 석사논문을 세심하게 인용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참고문헌 목록에는 다 포함돼 있다"며 "10년 전에 비해 강화된 현재 기준에서 보면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표절이란 주장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술단체협의회는 지난 5월 2008년 교육부 가이드라인 등을 기준으로 정 후보를 포함해 당선자 7명의 논문에 대해 표절 판정을 내렸다.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자원부 장관 취임 당시 논란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취임하기에 앞서 정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증 공세를 겪었다. 당시 인사청문회 회의록에 따르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 후보의 딸(당시 27세)과 아들(당시 25세)이 별다른 소득 없이 각각 7,700만원과 1억400만원의 예금을 보유한 것에 대해 "편법 증여를 통한 세금 탈루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 후보는 "91년에 외할머니로부터 일부 증여를 받았고 나머지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모은 돈"이라고 답했다.
또 정 후보의 배우자가 총선 때마다 지역구(전북 진안ㆍ무주ㆍ장수ㆍ임실)로 34~100일 정도 주소를 옮긴 것을 두고 '위장전입'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당시 "선거기간 가족이 현지에 내려와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이후 여당 대표(열린우리당 의장대행)를 맡았던 정 후보가 3개월 만에 청와대의 장관직 제안을 수락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당을 추슬러야 할 시기에 국정 경험을 쌓기 위해 무책임하게 정부로 갔다는 지적이었다.
한미FTA '말 바꾸기' 논란
정 후보는 2006년 산자부 장관으로서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FTA 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당시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한미FTA를 홍보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2008년 7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정 후보의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그 해 12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상정하자 민주당은 해머까지 동원하는 등 극렬히 저항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이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자기부정의 극치"라는 비판의 소리도 나왔다.
정 후보 측은 "우리나라는 통상 국가인 만큼 FTA를 무조건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참여정부 때부터 '선(先)대책, 후(後)비준'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굴복해 양국간 이익균형을 깨뜨렸기 때문에 재재협상을 통해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 집값·사교육비 부담 줄여 '빚 없는 사회'로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가 주력하는 핵심 정책 방향은 '빚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집값과 사교육비 등으로 가계 부채가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으로 복지ㆍ경제민주화ㆍ교육 개혁ㆍ경제 성장 등을 두루 아우르는 키워드로 평가된다.
정 후보는 먼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하우스 푸어'(집값 하락과 거래 실종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이 큰 주택 소유자) 대책으로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기구(기금)를 통해 하우스푸어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로 전환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경우 주택 소유자는 임차인 신분으로 주택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금이 어느 수준의 가격으로 주택을 매입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본보 선거보도 자문위원인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주택 수요를 창출해 임대를 활성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하지만 금융기관이 주택을 매입토록 하면 관치금융 논란이 제기 될 수 있는데다 위험 부담을 은행이 떠안는 셈이어서 은행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우스푸어 주택을 은행이나 제3의 공적 기구가 매입하려면 결국 공적 성격의 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엔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후보는 또 대부업 최고 이자율 상한을 현행 39%에서 30%로 낮추는 한편 불법 고리 사채를 무효화하고 불법 이득을 몰수 반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 직속의 부채 전담 기구도 설치할 생각이다.
정 후보는 빚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 분야에서 사교육비 부담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학원의 선행 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사교육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과외 교습 금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어서 이 역시 위헌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캠프 관계자는 "전면적으로 과외를 금지할 수 없지만 학원 심야 교습 금지는 합헌 결정을 받았다"며 "공공적 목적에서 제한을 두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는 대학 선발이나 공공부문 취업 시 출신 지역과 소득계층을 안배하는 기회균형선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기회균등법 제정도 공약했다.
이와 함께 정부 개편이나 개헌과 관련한 방안도 상세하게 제시했다. 경제 위기와 교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사회통합위원회와 교육인적자원위원회를 각각 신설하고 정보통신부 등을 부활해 정부 정보 상당수를 인터넷으로 개방하는 등 유능하고 청렴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경제 안보와 토지공개념을 도입, 완전 고용을 위한 국가적 노력 등 경제민주화와 국민 기본권을 확충하는 내용의 개헌안도 제시했다. 하 교수는 "빚에 의존하지 않는 가계 살림을 만들겠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빚 없는 사회란 슬로건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정부가 금융 부문에 지나치게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의 경우에도 시장 질서와 구조적 문제 등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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