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대안영상 미디어 예술축제인‘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네마프)이 25일 막을 올렸다. 12회째를 맞은 이 행사의 개막작은 모두 3편. 이 중엔 한국작품 ‘숭시’도 들어 있다.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영화다. 주최 측은 “제주의 지역성을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 20개국에서 초청된 240여편의 출품작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이는 사진작가 임흥순(43)씨다. 서울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소외 계층의 삶과 기억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숭시’도 그동안 해왔던 기록 작업의 연장선”이라며 “단순히 4ㆍ3을 이야기하기보다 치유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4ㆍ3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사건 이 전의 불길한 징후들과 이 후의 상황을 에둘러 묘사하고 있다. “‘숭시’는 불안한 징조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어떤 사건들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없어요.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회문화적인 징후들을 제주의 자연을 통해 추상화시켜 표현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24분 가량의 짧은 영상엔 특별한 서사 없이 4ㆍ3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섬 곳곳에 나타났던 자연의 징후들과 현재 제주의 풍경들이 맞물리며 등장한다. 갑자기 바다에 친 그물에 쥐떼들이 걸리는가 하면 관음사에서 대낮 번개가 몰아치고, 대나무에 느닷없이 꽃이 피는 기이한 모습들이 사건 이전의 ‘숭시’다. 지금의 강정마을의 풍경은 이후의 ‘숭시’다.
임씨는 “4ㆍ3때 국가라는 거대 권력에 희생됐던 제주인들의 아픔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통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숭시’들을 포착하고 기록할 생각이다. 임씨는 편집을 거쳐 가을 께 ‘숭시’를 ‘비념’이라는 제목의 장편 영화로 선보인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다음달 11일까지 열리는 올해 네마프 출품작들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과 서교예술실험센터 등에서 볼 수 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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