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소송 중인 삼성가(家)의 이맹희(81) 전 제일비료 회장 측과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 측은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부장 서창원) 심리로 열린 세번째 공판에서 고 이병철 회장 사후 작성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의 의미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양측에 따르면 이 협의서는 이병철 회장 사망 2년 후인 1989년 작성됐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 협의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부실하고 작성 경위도 의심되기 때문에 이번 재판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 측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상속재산 분할 협의가 법적 효력이 발생하려면 상속될 재산이 특정되고 구체적인 합의도 존재해야 한다"며 "평범한 가족 간의 유산 분배도 아니고 국내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의 유산을 나누는 서류로 보기엔 공증도 안됐고 작성 일자조차도 없는 등 지나치게 내용이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 측은 이어 "빈약한 내용의 협의서가 작성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선대의 유지와 상관없이 협의서 내용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희 회장 측은 이에 대해 "협의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가족들에게 큰 틀에서 적정하게 재산을 분배한 뒤 (사망 이후) 남은 일부 실명재산을 재분배한 것일 뿐"이라며 "완전한 형태의 협의서가 아니지만 이맹희 전 회장도 이 사실을 알고 날인했고 이후 25년 동안 모든 상속 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협의서의 의미는 '이맹희 전 회장이 당시 유산 상속 과정을 이미 모두 알고 동의했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방이 이어지자 협의서의 증거 채택 여부를 시간을 두고 판단하기로 했으며, 삼성가의 차명주식 조성과 처리 정황에 대한 판단을 위해 삼성특검 기록 일부를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8월29일로 예정된 다음 재판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의 실명전환 시기에 대한 입증이 진행된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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