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버스정류장에서 야쿠르트를 파는 아줌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녀는 야쿠르트 손수레를 한 손으로 잡고,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간은 출근 시간의 막바지,
오전 8시 반 정도의 시간이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지각한 회사원들과 학교에 지각한 학생, 그리고 두 번째 수업을 받으려고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온 나였다. 대부분 그 아줌마를 보고 욕했을 것이다. 지각이 임박한 자신의 처지는 잊은 채로 말이다. 그래도 야쿠르트 아줌마가 양 미간을 찌푸리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일상적인 일이었다. 요즘은 어느 순간부터 일상적인 일들은 모두 사라지고 비현실적인 일들만 가득한 하루가 펼쳐졌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그제 오후 2시 청와대에서 발표한 사과성명에서, "저 자신은 처음부터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출발했고, 나름대로 이바지하고 성과도 거두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고 하고서는 바로 "제 가까이에서 실망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지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모두가 제 불찰이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 했지만,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고 현안 과제들이 엄중하고 막중하다면서 더욱 "심기일전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다 잡아 일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 올레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다. 모든 언론에서 그를 집중 조명했다. 제주시는 제주올레 1코스를 잠정 폐쇄하기로 했다. 이상한 결론의 도출이었다. 사고 난 도로를 폐쇄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열 살 어린이가 동네 사람에게 납치되어 살해됐다. 이번에도 언론은 연일 사건을 보도하며 범인의 신상을 대부분 공개했다. 지극히 자극적인 보도들이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통영 어린이 살해 사건, 그리고 제주 살해 사건은 문제의 결이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넘기고 잠잠해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자극적인 사건과 보도들은 우리를 현실을 잘 보지 못하게 만든다. 몇 개의 선정적 단어들이 조합된 기사 머리기사에 더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우리에게는 발바닥이 없다. 늘 지상에서 살짝 떠있다. 우리는 유령처럼, 이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다. 놀이공원에 입장권만 들고 들어가면 이런 기분일까. 자유이용권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놀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억지로 심어주는 축제의 공간. 개장시간이 끝나면 다음에는 재밌겠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삶의 반복이다. 부러워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들 속에서도 삶은 반복을 거듭한다. 우리는 버텨내야 한다. 삶을 사는 사람과 삶을 버티는 사람은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단순반복노동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한술 더 떠 각종 위기론들이 우리를 휘어잡고 흉흉한 범죄들이 연일 보도 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살만한 곳이 아니게 되었다. 그 속에서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무심결에 거울을 봤을 때 깜짝 놀라게 되듯 사회가 나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늘 당혹감을 준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하나도 거론되지 않는다. 단지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공포심이 적금처럼 쌓이고 있다. 실제로 이에서 오는 좌절, 무기력, 자학, 우울증 등이 극단적인 사건들을 일으킨다. 한 번 상실된 사회도덕성을 극복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삶의 방향은 물론 대부분 개인의 노력과 책임이다. 하지만 진짜 위기를 감지했으면 그 위기를 퍼트리기 전에 이겨낼 수 있는 시스템적인 개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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