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독재, 경제개발 위해 불가피" 보수 논리는 비약… '민주적 근대화가 현실서 가능한가' 진보도 더 고민해야
민주주의를 가로막은 장기 독재자인가, 보릿고개를 없애고 산업화를 이룬 탁월한 리더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는 눈은 사람에 따라, 입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린다. 그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것은 그가 재임한 기간(18년)도 길지만 그 공과도 그만큼 크고 상반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무덤에만 있던 박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민주화와 함께 부활하기 시작했다. 유신시대 투쟁의 주인공들이 정권을 잡으며 실패와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그는 탁월한 리더로 재평가됐다.
이제 그의 사후 33년만인 올해, 그의 신화가 다시 한번 선거라는 도마에 올랐다. 그의 DNA를 이어받으며 5년 가까이 대세론을 지키고 있는 장녀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의 중심에 있다. 박 위원장은 최근 5ㆍ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여론조사에서 그 발언에 찬성하는 사람이 50%를 넘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진보적 사회학자로 10년 가까이 박정희 연구에 천착해온 조희연(56)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박정희에 대한 공과, 부활의 배경과 의미, 전망을 들어보았다. 유신시대 긴급조치에 걸려 1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조 교수는 "박정희는 긍정과 부정의 다면적인 얼굴을 지닌 인물"로 규정하고 "그의 부정적 측면을 현대적 의미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를 연구하기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긴급조치 9호 세대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1975년은 박정희 체제의 가장 폭압적인 시대였고 민주주의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죠. 박정희를 과잉정치화, 과잉일반화 하려는 뉴라이트 세력들의 인식을 보면서 도전의식이 생기더군요. 그게 연구의 중요한 동력이 됐죠. 박정희 시대를 진보프레임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저의 과제이고 반독재 세대의 과제라고 생각했지요."
조 교수는 1978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1년을 복역한 후 박 대통령이 서거하던 해인 1979년 8ㆍ15특사로 석방돼 복학했다. 그는 자신이 유신체제의 희생자이기도 했지만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박정희 관련 논문을 낸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이다. 2002년에 낸 저서 <국가폭력과 역사적 희생> 은 바로 박정희 시대 폭력을 해부하는 것이었다. 국가폭력과>
-그동안 학계의 박정희 연구 흐름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1970년대까지는 박정희를 영웅적 지도자로 묘사하는 관변적 연구만 허용됐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붕괴되면서 반 박정희 연구와 인식이 대중화했지요. 진짜 도전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친박정희 인식의 재등장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도전이 있어요. 탈근대적 박정희 시대 연구, 뉴라이트의 박정희 연구입니다.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도 반박정희적 인식 프레임을 확장하여 성찰하려는 경향과 박정희 시대의 폭압성, 착취를 강조하면서 연구를 지속해가려는 경향이죠."
-조 교수의 연구는 어느 방향인가요.
"박정희 시대의 폭력성, 반민중성을 출발점으로 하되 이를 훨씬 더 풍부하게 보자는 거죠. 저는 하나의 박정희가 아니라 다양한 얼굴의 박정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학계에서 박정희 해석이 새삼 논란이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뉴라이트'를 표방한 보수학자들이 박정희 재조명에 적극 나서면서부터다. 그를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진보 학자들이 반발했다. 그 선두에 조 교수가 있었다. 진보학계 내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사이의 이른바 '대중독재 논쟁'이 대표적이다. 임 교수가 박정희 시대 산업화 과정을 대중의 자발적 동원에 의한 '대중독재 시기'로 정의하자 조 교수는 독재와 반독재의 차별성을 없앤다고 비판했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개발모델이 권위주의적 산업화 모델, 성공한 농촌개발 모델로서 내세울 만합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 성과는 복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것은 박정희의 리더십으로만 된 건 아니잖아요. 중동 특수와 같은 우연적 요인도 작용했습니다. 외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벌인다고 꼭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현지의 조건, 대중의 자발성 등을 고려해야 하죠."
-진보진영은 박정희시대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인상도 주는데요.
"그런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새마을운동이나 박정희 체제 전체에 대해 관제동원이나 폭력으로만 작동한 체제로 환원해버린 면도 있습니다. 진보도 그걸 더 보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제가 도전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주장을 몇 번 하다보니 박정희 체제를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박정희의 독재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거 같은데.
"개발독재체제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을 분류해보면 4가지 유형이 가능해요. 경제적으로는 개발 성공모델과 실패모델,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모델과 독재모델입니다. 박정희는 독재이면서 성공한 권위주의적 근대화 모델이죠. 문제는 민주주의적이면서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민주적 근대화 모델은 상상에 불과할 뿐 불가능한 것'이라는 일부 주장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어요. 개발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하다는 뉴라이트적 인식이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물론 저는 민주적 근대화 모델이 현실에서 어려웠다는 점을 진보가 직시하고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조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학자로서의 객관적, 과학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박정희가 이룬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면서도 이를 위해서 독재가 불가피 했다는 식의 논리는 비약이라고 단정했다. 특히 1972년 10월유신 같은 억압적 방식을 택하지 않고 얼마든지 다른 경로를 택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됐다면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했다.
-박정희의 긍정적인 정책이나 성과 5개를 꼽는다면.
"개발독재 하에서 육성된 대기업이 가족기업, 측근기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폐해가 대통령 친인척 기업들을 육성했는데요. 삼성, 현대가 박정희의 친인척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기업의 성과를 연계시키는 시스템도 평가할만합니다. 매달 한 번씩 수출 독려 회의를 했죠. 그리고 기업의 성장이 사회에 환원됐습니다. 고교 평준화, 그린벨트도 긍정적인 측면이죠."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정책이나 결과는.
"먼저 인혁당 사건을 들고 싶어요. 박정희 시대의 비인간성, 가혹성을 전 세계에 여실히 드러냈죠. 그리고 긴급조치 9호, 노동 탄압, 대북 적대정책, 부패문제입니다. 박정희 체제는 민중의 저항으로 붕괴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자기 붕괴'를 했다고 생각해요. 박정희는 구조적 부패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구조의 정점이었어요. 혹자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 측근 비리와 비교하지만 지금은 단임이고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까 권력엘리트의 부패가 노출되면서 더 부패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1990년대에 태어난 지금 20대는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4ㆍ19 혁명을 경험하지 않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한데 교과과정상, 현대사 수업을 안 듣고 대학 온 학생들이 많죠. 다만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는 학생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게 한국사회의 정치적 역동성이라고 봐요. 최근 <민주주의 좌파, 철수와 원순을 논하다> 란 책을 냈는데, 그 책의 전제는 박정희 시대를 통해 한국사회에 두 주체가 출현했다는 겁니다. 하나는 재벌, 대자본, 대기업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역동적인 대중이죠. 두 주체가 화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대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희 시대를 넘어서는 모델을 통해 이 두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해요." 민주주의>
화제를 올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과 대선전망으로 돌려 보았다. 조 교수는 지난 번 대선 때 이명박과 박근혜가 박정희의 두 얼굴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 이명박을 개발주의적 박정희의 현대적 모습, 박근혜를 자연인 박정희의 딸이자 반공주의적 박정희를 표상하는 존재로 표현한 바 있다.
-올해 대선은 박정희 대 반 박정희 구도라고 합니다. 박정희 향수가 선거 때마다 부활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반박정희 세력이 실패하는 시점에서 부활하는 것 같아요. 반박정희 세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 그들의 공신력이 상실되는 지점에서 언제나 박정희는 우리를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아요. 문민정부 말기, 노무현 정부 말기, 다 그렇잖아요. 반박정희 세력이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지점에서 반성하고 한계를 봐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거죠. 여기서 안철수가 부상하는 겁니다. 안철수는 문국현 계보 속에 있다고 봅니다. 체제 내에서 사회적 책무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감수성을 갖는 공공적 엘리트에 대한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박근혜 "5ㆍ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두고 논란이 거셉니다.
"그게 보수의 한계 지점인데, 저는 그런 표현을 넘는 박근혜 인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정희 체제의 양면성을 못 보는 것이지요. 박정희 체제는 부인할 수 없는 두 가지 팩트가 있어요. 하나는 박정희 시대에 한국의 산업화가 일정한 도약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박정희 체제는 누가 뭐래도 민중의 저항으로 붕괴했다는 것. 박근혜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이유를 자기 해석 프레임 속에 담아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1960, 70년대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진보 진영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비롯해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는 박 후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박 후보가 과거의 보수적 역사인식이나 태도를 유지하면, 진보 진영에게는 훨씬 더 유리한 구도가 되겠지요.(웃음) 그렇지만 한국의 정치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보수가 훨씬 더 선진화해야, 그런 선진화한 보수를 대면하는 진보가 더 역량 있는 진보로 발전하는 것 같아요. 정치발전은 적대적 갈등의 영역을 축소시켜가고, 비적대적 갈등의 영역을 확장시켜 가는 거에요. 그런 점에서 보수가 적극적으로 변하면 좋겠죠. 정수장학회는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고 봐요. 대선 막판에 털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선거철 마다 박정희 신화가 되살아 납니다.
"통계를 따져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박정희 지지도도 추락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 처지에서도, 이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통해 개발주의적 박정희의 몰락에 동반추락하지 않고, 빠르게 개발주의적 박정희의 모습을 상쇄하는 전략으로 민생, 복지 등을 이야기하게 된 거죠. 저는 박근혜에 반대하고 박근혜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각축하는 진보 진영의 일부로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이기도 하지만, 박근혜나 보수 진영 자체가 1960, 70년대의 일정 측면만 부각시켜서 그 자산에 의존하려고 하기보다 박정희 시대의 문제점을 성찰하면서 앞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측면을 현대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더구나 박근혜 역시 박정희의 향수에 기댄다던가 하는 것은 결코 승리를 위한 담보가 될 수 없겠죠."
80년대 말 '사구체 논쟁'으로 부각… 박원순과 참여연대 창립해 시민운동…
2000년대 이후 정치경제변동 연구
■ 조희연 교수는
"1980년대 사구체 논쟁의 언저리에 있던 조희연, 90년대 박원순 변호사와 참여연대 만들던 조희연, 그리고 지금의 조희연이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연속성이 있다고 봐요."
조희연 교수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북 정읍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대 노동운동과 학문 사이에서 고민한 평범한 대학 강사였다. 조 교수가 이름을 알린 것은 80년대 말~90년대 초반 고 박현채 선생과 <한국사회구성체논쟁> 을 통해 당대 한국사회 논쟁의 쟁점들과 입장을 정리하면서부터다. 한국사회구성체논쟁>
그는 '급진민주주의(87년 민주화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담론)'란 기준을 통해 정통 레닌주의적 프리즘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구성체논쟁의 핵심을 정리했다. "NL(National Liberation)이라고 하는 반미자주파, PD(People's Democracy)라고 하는 평등파의 합리적 핵심은 무엇인가. 저는 이 두 흐름을 급진민주주의를 바라는 흐름의 두 형태로 보고, NL을 급진민족주의, PD를 사회경제적 급진주의 또는 노동자급진주의라고 해석했습니다."
90년대 그는 동갑내기 동료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만나 17년간 함께 시민운동을 해왔다. 박 시장은 2002년 참여연대를 떠났지만 조 교수는 참여연대에 남아 현재는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사회를 통해 아시아정치경제 변동을 설명하는 학술이론을 구축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재해석해 박정희 시대를 성찰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동원된 근대화> 집필을 비롯해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진행한 급진민주주의 세미나와 아시아 NGO대학원 강의 등은 모두 이 연장선이다. 방학을 맞은 요즘은 제주도에서 사회과학연구서 <투 트랙 민주주의> 를 집필하고 있다. 투> 동원된> 박정희와>
한국 정치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투 트랙의 상호작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 조 교수는 "(제도정치를 강조한)최장집 선생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에 대응해 저는 '제도와 운동의 상호작용으로 본 한국민주주의 변화'를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은 세계적인 수출 상품을 만드는데, 인문사회과학은 아직 그렇지 못해요. 학술 이론의 종속성 때문이죠. 우리의 역사 경험 속에 있는 (세계)보편적 요소를 항상 고민합니다." 민주화>
주요저서로는 <계급과 빈곤>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비정상성에 대한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등이 있으며 최근 <민주주의 좌파 철수와 원순 논하다> 를 냈다. 민주주의> 박정희와> 비정상성에> 한국의> 한국의> 현대> 계급과>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한동주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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