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짜리 세계여행을 떠난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심점을 파리에 놓고 일단 아프리카로 떠나겠다는 제 결심을 밝힌 녀석은 내일이 그 출정의 날이라며 한국의 폭염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70대 노인 부부가 목숨을 잃었다더라. 사람이 그렇게도 죽는구나 싶더라니까. 무시무시해, 장난 아냐.
전화를 끊고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녀석이 향하게 될 아프리카의 날씨를 클릭해보았다. 현재 서울 기온 30.4도인데 반해 이집트 카이로는 38도, 에티오피아의 디레다와가 33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는 23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이 16도를 기록하고 있었으니 이거야 원, 누가 열사의 나라가 곧 아프리카라고 했던가.
자다 몇 번씩이나 깨어 뒤척거리는 와중에도 끝끝내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들어서였다. 연일 뉴스에서는 전력 수급에 빨간 불이 들어온 상황이라며 절전을 캠페인처럼 내걸고 있었다.
남은 긴긴 더위에 느닷없이 전기 똑 떨어지면 어쩌나, 땅을 파나 벽을 뚫나 그래서 충전된다면 삽질깨나 하겠건만 그게 무슨 수라고 나도 참. 점심에 어쩌다 이리 애국자가 되셨냐고 누군가 물었다. 런던올림픽 시작해서 새벽까지 시청한다고 생각해봐. 텔레비전만 보겠어? 온갖 야식배달부들 밤새 갖다 나르지 않겠어? 치킨도 전기가 들어와야 튀기고 보쌈도 전기가 들어와야 삶아지는 법이거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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