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친인척과 측근 비리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은 한국 정치사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집권 초반엔 서슬 퍼렇던 개혁 구호는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때문에 대국민 사과로 바뀌는 일이 공식처럼 되풀이 돼 왔다.
누구보다도 도덕성을 주요 무기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임기 초반부터 측근 비리로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통상 정권 말기에 집중됐던 대국민 사과를 취임 10개월 만에 4차례나 반복했고 이후에도 연례 행사처럼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003년10월 '영원한 집사'로 불리던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비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과와 함께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며 승부수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3월에도 주변 인사들의 비리 의혹에 "같은 일로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불과 2개월 뒤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과오는 분명히 저의 허물"이라는 사과문을 다시 읽었다.
야당 총재 시절 현직 대통령의 아들 비리 사건에 "아들의 허물은 아버지의 책임"이라며 날을 세웠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똑같은 처지에 놓이긴 마찬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의 첫 사과는 취임 1년 3개월 만에 몽골에서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죄송하고 착잡한 심정" 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이후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6월 김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의 잇단 구속에 대해 "지난 몇 달 동안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왔다. 국민께 마음의 상처를 준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사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도 우울하긴 매한가지였다. 1997년 2월 차남 현철씨가 한보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며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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