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40대 여성 관광객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수사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시신 유기에 유력하다고 지목한 장소를 수색하지 않다가 범인이 자백한 뒤에야 이 곳에서 시신을 찾아내는 등 경찰수사가 허술했다는 지적이다.
23일 피해자 강씨의 시신이 발견된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대나무 숲은 경찰이 지정한 '집중수색지역'에 포함돼 있었다. 여기는 피해자 강모(40)씨가 실종 당일인 12일 휴대폰으로 마지막 인터넷 접속을 한 뒤 전원이 꺼진 오전8시12분까지 신호를 주고 받은 종달리 기지국의 반경 5㎞ 이내 지점. 게다가 마을 주민들도 경찰에 대나무 숲을 '꼭 수색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조언했다. 주민 강모씨는 24일 "차가 다닐 수 있는 논길과 맞닿아 있고 워낙 우거진 곳이라 시신을 숨길 가능성이 높은 장소라고 나를 포함해 주민들이 여러 차례 지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종신고가 들어온 14일부터 '바둑판 식' 수색을 통해 샅샅이 살폈다고 말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고, 피의자 강씨가 시신을 뒀다고 털어놓고 나서야 다시 대나무 숲을 뒤져 23일 시신을 찾아냈다. 마을 주민 강씨는 "시신이 발견된 뒤 경찰 관계자에게 애초에 '왜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대나무가 빽빽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일대의 대나무는 육지의 대나무와 다른 해죽(海竹)으로 키가 작고 가늘고 빽빽하게 자라 겉에서 봐서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한 마을 주민은 "만약 경찰이 마을 주민들의 말대로 제대로 수색만 했더라도 훨씬 빨리 시신을 찾고, 시신 훼손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나원오 제주경찰청 수사과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종신고 직후 시신발견 지점도 수색을 했지만 대나무 숲이 우거져 발견하지 못했다"며 "열심히 했지만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경찰 수사 절차의 적법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20일 저녁 피의자 강씨를 임의동행을 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다음날 새벽까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강씨의 집과 창고 등 곳곳을 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주민은 "자고 있는데 여러 차례 찾아와 강씨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며 "그 때 칼 몇 점을 찾았다는 말을 경찰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강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받은 것은 23일이다.
서귀포=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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