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ㆍ41)씨가 25일 시작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으로 전격 발탁됐다. 주최 측은 주인공인 네덜란드인 선장 역에 당초 캐스팅됐던 러시아 출신의 바리톤 예브게니 니키틴이 가슴에 나치 문양 문신이 있다는 스캔들로 사퇴하자 커버(주요 배역의 성악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할 때 대신 출연하는 성악가)였던 윤씨를 출연시키기로 했다.
바그너가 1876년 자신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첫 공연을 위한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을 지으면서 시작된 바이로이트 축제는 바그너의 작품만 상연한다. 동양인은 주역으로 좀처럼 캐스팅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윤씨를 비롯해 필립 강(강병운), 연광철씨 등 한국인 성악가들이 꾸준히 무대에 서 왔지만 한국인이 타이틀롤을 맡기는 처음이다.
2004년부터 이 축제에 참여해 온 윤씨는 올해 '로엔그린'에서 왕의 대변인 역할인 헤어루퍼를 맡았다. '로엔그린' 리허설에 한창이던 그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최종 리허설을 앞두고 출연 제안을 받았다.
그가 타이틀롤을 맡게 된 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5월 쾰른 국립극장에서 같은 역으로 무대에 올라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은 '준비된 네덜란드인'이다. 튼튼한 성대를 타고난 헬덴 바리톤(영웅적인 목소리를 가진 바리톤)인 그가 늘 머리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다니는 것도 동양인이라서 분장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전의 인터뷰에서 "조급증으로 무리한 역할을 맡아 목을 다친 적이 있어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준비하며 기다리는 법을 알았던 윤씨는 올해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각 6회씩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에 출연하게 돼 총 12번이나 무대에 오르는 가장 바쁜 남자가 됐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