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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안양문화예술재단 무대감독 심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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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안양문화예술재단 무대감독 심우인

입력
2012.07.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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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을 앞광대, 뒷광대로 구분해 부르는 어느 극단의 어투를 빌면 무대감독 심우인(43)씨는 뒷광대의 우두머리다. 자신의 일을 "배우, 연출, 기획의 희망을 조율하는 창구"라고 말하지만 사실 객석이 무대 감독(무감)의 존재감을 느낄 일은 없다. 그러나 그 없이는 나날의 무대가 성립될 수 없다.

지난 6월 안양문화예술재단 무대예술부 총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무대감독 심우인(43)씨는 일찍이 그 은둔의 미학을 깨치고 실현해 왔다. "첫 회에서 마지막 회까지 매회마다 무대의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원칙으로 그는 배우와 연출가의 빈 구석을 메워 왔다. 그것은 무대의 굵은 획을 좌우하는 결정짓는 일이면서도, 무대 주변에 펼쳐지는 우수마발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일을 그는 19년 동안 거른 적이 없다. 그 없이는 무대의 디테일도 없다.

1993년 극단 미추에 들어간 것으로 무대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차범석, 손진책 등 대선배들의 격려와 질책을 밥 먹듯 하며 커 온 그가 무감으로서 본격적 의식을 갖게 된 것은 1997년 세계연극제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작품은 물론 극장 구조까지, 무대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연출자와 배우보다 앞서 작업의 실질적 기준을 제시하는 자리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죠."무감이 연출ㆍ안무 등의 보조역할이나 진배없는 관행이 굳은 이 곳을 새삼 돌아보게 됐다.

이후 미국 유학 가려던 꿈은 1997년IMF금융위기로 접어야 했다. 그러나 1999년 임진각에서의 밀레니엄 페스티벌 'DMZ2000 - 백남준비디오퍼포먼스' 총무대감독 이후 SIDANCE(서울세계무용축제)의 무대ㆍ기술 감독 역임, 무대감독들이 모여 만든 회사인 '위드 센스(Cens)' 설립 등을 통해 스스로의 계획표를 꾸준히 실행해 갔다. 특히 2008년 강동아트센터 건립 당시 기술ㆍ제작 감독으로 일했던 것은 무감의 영역을 최대한 넓힌 계기였다. "당시 감리, 공무원, 현장 직원 등 모두에게 원수 졌죠. 배우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제가 끝까지 시비를 걸었거든요."

공채에 응모해 따낸 이번 자리는 또 다른 도전의 현장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서울 대규모 공연장을 떠나, 지방에 봉사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팔자일까요?"

2009년 사단법인 한국무대감독협회 이사직을 떠안은 그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더 있다. 그는 "140명의 회원을 비롯한 무감들의 처우 개선이 급선무"라며 "노조가 없어 처우가 열악하고 생활마저 불안한 그들이 최소한의 급여는 보장받는 제도를 수립하는 데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3년 이내는 어느 정도 가시화될 것이라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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