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의 집에 갔던 군사들이 그의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오자 별감은 그들을 사정없이 묶어서 압송 대열에 합류시켰다. 부대가 철수하기 전에 별감이 마당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말했다.
김만복과 유영길은 명일 아침까지 자수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영에 따르지 않는다면 김만복의 가족과 유영길의 형은 대신 처벌을 받을 것이다.
청군은 이날 왕십리 일대에서 백오십여 명을 체포하고 이태원에서 이십여 명을 체포했다. 이날 군대의 진입을 눈치 챘던 김만복은 배추 밭고랑까지 기어나가 거름 구덩이에 짚을 깔고 엎드려서 발각되지 않았지만, 날이 새고 군대가 물러간 다음에 식구들이 끌려간 사실을 알게 되자 도망을 포기했다. 그는 동관묘의 청군 군영으로 찾아가 자수했다. 운현궁 호종무사 허민과 유영길은 각각 어디로 달아났는지 끝내 잡히지 않았다. 허민은 아마도 그의 주인 이재면이 척족의 반대파에 들었으나 왕의 친형이고 보니 시국이 바뀐 뒤에 흐지부지되었을 터였다. 유영길 역시 이미 그의 형이 잡혔고 군직도 사수에 지나지 않았으니 수년 만에 잊혔을 것이다.
서일수와 이신통은 이튿날 도성 안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으로 청군의 왕십리와 이태원에 대한 야간급습 작전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일단 배오개에 나아가 더욱 정확한 소문을 듣고자 하였더니 김만복이 청군 진영에 잡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흥인문을 나서서 동관묘 부근까지 나가 보았지만 삼거리의 북편에서 건너다보기만 했을 뿐 경계가 엄중하여 통행할 수가 없었다.
사흘이 지나서 대문 밖 소문이 가장 먼저 모이는 배오개에는 체포된 군인들이 효수되었더라는 말이 돌았다. 그것은 전 보러 들어온 장꾼들이 방금 구경하고 왔다는 소문이었다. 서일수와 이신통은 흥인문을 나가 동관묘 쪽으로 내려갔고 삼거리에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원래가 효수란 산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처분인지라 동관묘 정문 앞의 공터에 말뚝 박고 새끼줄을 매어 놓고 그 앞을 조선군 한 명이 총검을 옆에 끼고 지켜 서 있었다. 새끼줄 울타리 앞에 군란을 일으킨 자에 대한 처형을 알리는 방문이 붙었고 기다란 장목 위에는 상투를 풀어 묶어 놓은 목이 매달려 있었다. 매달린 목 아래 죄목과 이름이 붙은 종이쪽이 바람에 팔락대고 있었으며 장목의 대열 뒤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목 없는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 김만복의 얼굴을 찾아낸 두 사람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만복의 얼굴은 이미 거멓게 죽은 흑색이었고 두 눈의 한쪽은 퀭하니 부릅떴으나 다른 한쪽은 반쯤 감겨 있었다. 서일수가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이신통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이제 그만 가지.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도성으로 들어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맛골로 들어섰으며 주점에 들어가 탁주를 벌컥대며 마시고 나서야 말문이 열렸다. 이신통이 훌쩍이며 울음을 터뜨리자 서일수가 말했다.
우리 저 사람 수습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요?
저 시신들은 어쨌든 가족과 동활인서의 일이 될 걸세.
서일수의 의견으로는 그들이 살던 약재 창고의 주인 의원은 잡과 출신이라 혜민서나 활인서의 의원들과도 서로 연줄이 닿을 것이니 동활인서의 의원을 통해 보자는 거였다.
그런 수가 있군요. 제가 의원님과는 식구 같은 처지니 한번 부탁해 보십시다.
이신통이 구리개 약방으로 가서 늘 하던 대로 전기수 노릇을 하고는 주인 의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김만복이를 사귀게 된 사연과 그가 사내로서 의협심으로 동료 군인들의 소요에 앞장섰던 것을 말하고, 다만 자신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주고 싶다는 사연을 앞뒤 조리에 맞게 얘기했다. 의원은 빙그레 웃으며 신통의 얘기를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 참 신통방통한 생각이로다! 마땅히 그래야겠지. 지금 때가 마침 복더위 철이니 시신을 방치하는 것은 역병을 불러들이는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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