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올레길 1코스 도보여행에 나섰던 여성 강모(40ㆍ서울)씨를 살해한 범인은 강씨가 머물던 숙소 인근 마을주민 강모(46)씨로 23일 밝혀졌다. 특히 범인 강씨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자른 후 버스 정류장에 가져다 놓을 만큼 대담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추가 범행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범행 수법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강씨는 범행 당일인 12일 오전 8시쯤 올레길 1코스 안내소와 말미오름(두산봉) 사이에 있는 운동 시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강씨는 당뇨 증세가 있어 종종 올레길로 운동을 하던 터였다. 강씨는 잠시 후 소변을 보고 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피해자 강씨가 휴대폰을 꺼내자 자신을 신고하려는 줄 알고 "왜, 왜"라고 외치며 휴대폰을 뺏으려 했다. 강씨는 곧바로 달아나려는 피해자 강씨의 배낭을 잡아당겼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게 강씨의 진술이다. 강씨는 이어 같은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 양모씨의 트럭을 빌려 피해자 강씨의 시신을 인근 밭 중간에 있는 대나무 숲으로 옮겼다. 다음날 해가 진 뒤 눈에 띄지 않게 시신을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6일 후인 19일 밤 10씨쯤 시신의 손을 칼로 자른 후, 피해자 강씨의 운동화에 담아 18㎞ 떨어진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 앞 버스정류장에 놓았다. 올레길 1코스에 대한 군경의 수색이 강화되자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검거 과정
경찰이 강씨를 용의선상에 올린 것은 피해자 강씨가 실종된 날 아침 "올레길 안내소와 말미오름 사이 운동시설에서 샌들을 신고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운동하는 남성을 봤다"는 한 관광객의 제보가 시작이었다. 경찰은 범인 강씨가 살고 있는 인근 시흥리 마을의 남성 전부를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특정할 만한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일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강씨의 신체 일부가 발견됐고, 경찰은 인근 도로의 CCTV 분석을 통해 시흥리 주민 강씨가 친구 양씨의 트럭을 몰고 가던 모습을 찾아냈다. 경찰은 다음날인 21일 강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가 조사를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조사 후 강씨를 돌려보냈지만 피해자 강씨의 실종 당일 행적 등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고 진술도 오락가락했다"며 "다시 불러 조사하려 했지만 강씨는 잠적했다"고 밝혔다. 범인임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강씨 집 주변에서 잠복했고, 이날 아침 마을의 한 버려진 집에 숨어있던 강씨를 긴급 체포했다.
처음 강씨는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강씨가 시신을 유기하기 위해 빌린 친구 양씨의 트럭에서 혈흔을 찾아낸 사실 등을 집중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와 시신 유기 장소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잘려 나간 신체 일부를 분석한 결과 전문적으로 칼을 쓴 경험이 있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며 "강씨가 오랫동안 외항 선원 생활을 했다는 점도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 강씨 집에서 칼 몇 점도 찾아냈다.
이웃 주민들 큰 충격
시흥리 주민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시흥리는 올레길 1코스 시작지점으로 피해자 강씨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도 여기에 있다. 범인 강씨는 미혼으로 어머니 김모(79)씨와 단둘이 살고 있다. 20대 때 택시 강도 전과가 있는 강씨는 오랫동안 선원 생활을 해 왔던 탓인지 마을사람 중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흥리 주민 A씨는 "말 수도 적고 골목에 차를 댈 때면 혹시 빼실 거냐고 묻는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작 강씨가 마을에서 2㎞도 안 되는 곳에서 여성 관광객을 살해하고 시신 일부를 마을 부근 밭에 묻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주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범인 강씨는 두 얼굴의 살인마였던 셈이다. 주민 C씨는 "사람의 속내를 참으로 알 수 없다.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동네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일하는 밭에다 시신을 묻었다니 인간이 할 짓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귀포=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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