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시간에 가족끼리 무슨 대화를 해요? 대화가 안 통하는데. 그냥 밥만 먹어요."
"갑자기 성적 얘기가 나와요. 그러면 숟가락으로 머리 한 대씩 맞고요."
밥상머리에 마주앉은 부모와 자녀가 대번에 마음을 트기란 어렵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나 혼나지나 않을까 불안한 아이나 괴롭긴 마찬가지다. 밥 먹다 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2월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밥상머리교육이 비판을 받는 건 이 때문이다. 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족식사의 날을 갖고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천천히 먹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다 등 10개 실천지침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밥상머리교육이 성공하려면 밥상에 앉기 전에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밥상머리교육의 효과는 있다. 가족과 식사를 하지 않는 아이들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더 똑똑하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있다. 미 하버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만 3세 유아가 책을 통해 배우는 단어는 140개에 불과하지만, 가족 식사를 통해 배우는 단어는 1,000개에 달한다. 또 가족과 식사를 자주하지 않는 청소년은 가족과 식사하는 청소년보다 흡연 4배, 음주 2배, 약물사용 비율이 2.5배 높다는 미 컬럼비아대 연구도 있다.
28년간 교직생활을 한 송형호(52) 교사는 20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초중고 학부모 200명에게 까칠한 자녀와의 소통비법을 전수했다. 송 교사는 고1 딸과 '쩌는 표정'을 지으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쩐다'는 청소년이 많이 쓰는 신조어로 보통 '대단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우리 담탱이 진짜 짜증나!'라고 하는 딸에게 공감이 아닌 '왜?'라고 반문을 했다가 대화가 꼬여버린 경험이 있던 송 교사는 말할 때 딸의 표정을 따라 짓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빠가 내 마음을 알아주네' 싶었는지 딸의 감정 표현이 늘었다고 한다. 송 교사는 "어느 날 딸이 '아우, 아빠 표정 쩔어'라고 하더라"며 "아빠가 자기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는 걸 그렇게 애들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사는 또 "밥상머리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진다고 자녀와의 소통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며 "아이보다 어른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또 다른 강사인 남혜경(48) 학부모강사도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초4, 중1 자녀를 둔 남 강사는 "부모 나이 50세고, 아이 나이 12세라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50세로 키우려고 한다"며 "부모 나이는 애들 나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실천해왔다는 남 강사는 "오전 6시30분에 온 식구가 일어나 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서로 일상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아침을 먹는다"며 "아직 아이가 어려서 대화가 단절되기 전이고, 사교육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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