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에 걸고 싶다'는 칼럼을 썼다. 그가 우리 정치와 사회 지도자들에게 결핍된 자질과 미덕을 두루 갖췄다고 보았다. 시대를 앞서는 비전과 노력으로 독보적 영역을 개척하고 값진 성과를 망설임 없이 사회와 나눈 그는 천재성과 노력, 헌신과 배려의 미덕을 함께 지닌 드문 인물이다. 싫증나는 정치를 바꾸려면 대통령은 몰라도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 혁명의 기회로 삼을 만하다고 썼다.
그러나 이내 그에게 실망했다. 지지율 10%도 안 되는 박원순에게 '시민 후보'를 양보하고 지지를 당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대를 버렸다. 무엇보다 유권자의 지지를 제 마음대로 넘겨줄 수 있는 자산으로 여기는 데 놀랐다. 게다가 박원순은 지난 행적에 비춰 서울 시정(市政)의 겉모습에 얼마간 변화를 가져올 뿐 정치와 사회에 대단히 신선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지 않았다. 안철수가 곧장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거뒀다.
안철수는 민생과 직결된 서울시정 곳곳을 참신한 발상과 따뜻한 배려로 돌보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았다. 그 수준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 등 나라의 진로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는 경륜과 의지, 혜안과 결단이 부족하다. 우리의 국가 지도자는 예나 지금이나 역사와 현실을 통찰하는 숭고한 비전과 사명감, 강인한 의지와 혁명가적 결단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저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어서가 아니다. 남북이 갈린 데다 이념과 지역과 계층으로 갈가리 찢긴 나라를 이끌고 험난한 미래를 헤쳐 나가려면 예컨대 박정희와 김대중, 두 거인에 비길만한 용기와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다.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분단 관리와 통일, 양극화 해소 등의 숱한 국가적 과제는 여전히 비범한 리더십, 현인 대통령을 요구한다.
안철수는 경륜과 기질 모두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젊은 유권자들과 대중의 환호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의 한계 또는 제약은 뚜렷하다. 그는 어제 밤늦게 방송된 '힐링 캠프'에서 "나라가 낭떠러지에 섰다"는 말을 앞세워 대권 도전 뜻을 밝혔다고 한다. 언뜻 오랜 모색 끝에 '불가피한 선택'을 결심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를테면 박근혜가 '아버지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 5· 16 쿠데타의 '혁명 공약'이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라고 선언한 것과는 그 절박함이 사뭇 다르다.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책 도 정작 내용은 그저 그런 모양이다.
안철수의 대권 도전 행보를 더러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비유한다. 2차 대전 승리를 이끈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공화당 후보로 영입돼 1952년과 56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그는 냉전 대결과 공산주의 저지에 힘쓰면서도 한국전을 종식시키고 매카시즘 광풍을 견제했다. 균형 잡힌 국정 운영으로 역대 '톱 텐(Top Ten)' 대통령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학자들의 실증적 연구에 의하면, 그의 성공은 실제 치적보다 인간적 면모에 의존했다. 성실성 청렴성 책임감 신앙심 등과 더불어 무엇보다 대중에게 순수한 호감을 주는 성품이 자산이었다. 그 때문에 전문학자들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전시 연합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경륜을 외교안보 분야에서 발휘했으나, 내정 또는 내치(內治)는 부통령 닉슨에게 거의 내맡겨 국가 지도자 역할에 소극적이었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대선 캠페인을 좌우하는 정책 이슈, 어젠다(agenda)는 개별 후보와 유권자들이 제시하는 어젠다와 국가적 어젠다가 제각각 다를 수 있다. 거센 변화 물결이 요동치는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인물과 어젠다를 선택 기준으로 삼을지, 모두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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