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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민주화, 대선 이전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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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민주화, 대선 이전에 하자

입력
2012.07.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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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대 재벌기업들에서 1% 이하의 지분을 가진 총수가 60% 가까운 지배력(내부지분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대기업 집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참으로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얘기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제기되면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나타난다.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신속한 의사 결정,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확고한 리더십을 통한 기업의 효율성과 안정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된다. 세계 전자업계의 지존이던 소니가 쇠락하고 그 뒤를 따르던 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 일은 흔히 등장하는 메뉴다. 지난 십수년 동안 이건희 삼성 회장이 LCD나 반도체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할 때 소니의 전문경영인들은 자신의 거취에 영향을 주는 단기 순익에 매달렸고, 그 바람에 소니는 급격히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CJ그룹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도 자주 거론되는 사례다. 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총수의 지배력 확보가 결코 나쁘지 않고,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소니를 제치고 노키아를 제압하고 애플과 대등하게 맞서는 삼성, GM과 포드를 넘고 도요타나 벤츠를 위협하는 현대차를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그리스의 영웅 신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총수의 그릇된 판단과 과욕으로 숱한 대기업들이 무너졌고 그 여파로 국민경제가 수십조, 수백조원의 부담을 안아야 했다. 몇몇 재벌 총수의 성공 신화가 모든 대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돼서는 안 되며 이게 모든 잘못과 모순을 묵인하는 핑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성공들이 중소기업 등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정당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눈을 국민경제 전반이나 국민들의 삶으로 돌려보자. 재벌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끼워넣기, 협력업체들의 단가 후려치기로 중소기업들은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총수 자녀들이 빵집이나 순대 같은 골목상권에까지 진출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국민들은 비참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노인 자살율, 청소년 자살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안전, 주거, 일자리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는 이런 현실과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벌 총수의 지배력이 강화되든, 대기업의 경쟁력이 커지든, 수출이 증가하든 국민 경제가 피폐해지고 국민의 삶이 갈수록 망가진다면 그런 체제는 유지되기 힘들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상황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본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여야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경제민주화는 구호가 아닌 정책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살기가 어려워진 국민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내용 없는 논쟁으로 포장하는 것은 안 된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세우고 재벌 총수의 불공정을 처단하자는 식의 포괄적이고 감정적인 선언만으로도 안 된다. 실제 입법을 거쳐 정책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경제민주화는 진정성을 갖추게 된다.

진정으로 여야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이루려 한다면, 대선공약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지금 당장 국회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법을 만들고 정책을 내놓도록 하자.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어느 정당이, 어느 후보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으며, 어떤 실천수단을 제시하는지를 제대로 보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오근엽 충남대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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