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의 '맏형'격인 금융위원회가 CD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 반성의 목소리는 일체 없이 업계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금융회사들이) 담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금융위는 6대 금융지주사 회장을 비롯한 금융권의 PK(부산ㆍ경남) 독식 인사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데 이어, 저축은행 담당 과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졌다. 시민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금융위의 존폐론까지 제기하고 있어 차기 정부의 금융감독기구 개편 과정이 주목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CD 금리 담합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상관 없이 지난 2년여 동안 CD 금리가 식물금리가 되도록 방치해온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금융위는 작년 말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과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대체금리 선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CD 금리를 대체하는 금리를 찾기 위한 논의에 들어가자, "우리 업무인데 왜 너희가 나서느냐"며 제동을 걸었다.
금융위가 중단시킨 대체금리 선정 논의는 공정위가 담합 조사를 시작한 직후인 19일에야 재개됐다. 그 사이 저금리 추세 속에서도 CD 금리는 3개월 넘도록 연 3.54%로 고정됐다. 은행들이 부당한 금리로 이자 놀이를 하도록 금융위가 용인한 셈이다. 금융위가 공정위의 담합 조사를 자초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감독의 중요한 업무는 소비자 보호이며 그 최종 책임은 금융위에 있다"면서 "금융위가 소비자 보호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책 기능은 물론 금감원에 대한 관리ㆍ감독 업무도 엉망이었다. 저축은행 업무를 담당했던 금융위 모 과장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다른 금융위 간부들의 추가 소환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 수장에 대한 파행 인사도 구설수에 올랐다. 금융위는 최근 임기 만료된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자리에 소속 간부인 홍모씨를 적극 추천했으나, "PK 출신이 독식한다"는 여론에 밀려 퇴임인사까지 마친 안택수 이사장을 2번째로 연임 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인사를 단행했다.
금융위 수장의 무책임한 발언과 연이은 실책은 중요 정책과제 추진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연내 매각"을 강조해 온 우리금융 민영화도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던 KB금융 관계자조차 "현재 금융위의 처지를 감안할 때 추진 여부가 불확실해 보인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도 "개혁 대상인 금융위가 우리금융 매각을 연내 추진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저축은행 사태와 CD 금리 담합 의혹은 금융위의 앞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금융학회는 기획재정부가 금융정책권한을, 민간감독기구가 감독권한을 각각 행사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가 해외금융을 맡고 금융위가 국내금융을 전담하는 현 체제로는 효율성과 위기 대응력이 떨어지며, 금감원의 시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감독기능의 독립성과 중립성만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