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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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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81>

입력
2012.07.2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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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망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우?

이신통이 묻자 서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은 저희끼리 권세를 다투다가 모두 망하게 될걸세. 우리 백성들이라두 달리 살길을 찾아야 할 판이여.

칠월 열엿새 날에 이신통은 보통 때처럼 연초전이나 구리개 약방에서 전기수질을 하고 있었다. 운종가에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꾼과 전이 벌어져 있었으며 사람들은 지난 한 달 동안의 벼락 치듯 하던 시국의 변화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이신통은 배오개 연초전에서 책을 읽고 나와서 간단히 낮것 요기를 하고는 흥인문 못 미쳐 첫다리에서 『임경업전』을 읽고 있었다. 청중들도 시국의 분위기 영향을 받는지 청에 대적했다가 끌려가서는 세자를 구해내고 오히려 역적으로 몰렸던 임경업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임 장군이 김자점의 모함으로 죽게 되자 흥분한 청중들은 간신을 죽여라! 외치며 장 보고 와서 들고 있던 빗자루, 호미, 마른 생선 등속을 내키는 대로 던져서 이신통은 이마에 멍이 들기도 하였다. 한참 읽다가 임경업이 압송되어 처형되기 직전에서 끊고는 열립군 총각을 시켜 바구니에 엽전을 거두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김만복 별장을 아시우?

예, 잘 알다뿐이오?

그 사람이 오늘 저녁에 마전교 모줏집에 온답디다.

아 그 고깃집 말이죠?

내야 어딘지 알우? 김 별장이 전하라구 해서 당신을 찾아 다녔소.

이신통은 광통교 부근을 돌아 그날은 구리개 약방에 들르지 않고 늘 도성에 나왔다가 귀가할 때에 서일수와 만나던 연초전으로 다시 돌아갔더니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침울하게 종루를 행군하는 청군과 남산 아래 곳곳에 보이는 일본군에 대하여 볼멘소리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신통은 서일수의 소매를 잡아 끌고나가 김만복이 만나자던 얘기를 해주었고 그들은 즉시 종루 거리를 벗어나 청계천변을 따라 마전교 쪽으로 올라갔다. 하도감이 난리를 겪은 이후에 아직도 수습이 안 되어 군인 손님들이 드나들던 욕쟁이 주모네 모줏집은 어쩐지 휴업 중인 것처럼 한산했다. 두 사람이 삽작 안으로 들어서니 주모가 그날따라 얌전한 음성으로 그들을 맞았다.

어서 방에 들어가 보우.

방문을 열자 김만복은 혼자 빈 상을 마주하고 쪼그려 앉아 있었고 서일수가 말했다.

무사했구먼, 그동안 어디서 뭘 하구 있던 겐가?

아유, 여태 기다리느라구 목말라 혼났소.

언젠가 그날처럼 돼지 뒷다리 삶은 것과 술 한 동이를 시키고는 몇 순배 마시고 나서 김만복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허민이 조직했던 대원군의 무위대에 들었고 대궐과 운현궁을 오가며 호종했다. 며칠 전에 대원군이 중국으로 끌려가고 정국이 급변하면서 허민은 그들에게 소임이 끝났으니 무위대를 해산한다며 각자 도생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김춘영 영장이 삼청동 자택에서 청군에 의해 체포되었으니 주동했던 자기네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만복의 이야기를 듣고 서일수가 말했다.

어서 식구들 데리구 근기 지방을 벗어나지 그러나? 까짓 청군이 도성에 있어 봤자 제 나라 일도 아닌 터에 한두 달 지나면 돌아가겠지.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일세.

안 그래두 처가가 강원도라 그리로 들어가볼까 생각 중이우.

자아, 오늘은 아무 걱정 말구 한잔 하세나.

그들은 이러저러한 시국담을 나누며 전처럼 흥이 나지는 않았으나 오랜만에 밀린 회포를 나누었고 서일수는 김만복에게 내일이라도 왕십리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는 만복이 식구가 떠나는 길에 노자라도 보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밤 초경 무렵에 술집을 나왔고 마전교 위에서 헤어졌다.

그날 해시 무렵에 흥인문도 이미 닫혔고 숭례문도 닫힌 시각에 동관묘의 청군 진영에서는 마건충이 이끄는 병력이 조용히 장막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행군을 시작했고, 용산에 있던 오장경 부대도 지척에 있는 이태원의 군인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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