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생태계 연구자들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연구를 한다. TV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린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울창한 밀림 속 오랑우탄의 무리가 어슬렁거리거나, 얼음 위의 펭귄이 종종 걸음으로 이동하는 지역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생태학 연구의 대상물이다. 물론 인간들이 가끔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밀렵꾼이거나 화전민이기 일쑤고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방해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즉 인간의 간섭이 없는 상황이 생태계 연구의 이상적인 상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대략 870 만 종의 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균과 같은 미생물은 빼고도 이 정도니 정말로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헛되이 믿고 있는 바처럼 만일 이 많은 종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다면, 그 조물주는 참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생물종 중에 단 한 종이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생물이 이용하는 수자원과 질소 고정량의 절반 이상을 이 한 종이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 이 종은 바다에서 다른 생물에게 잡아 먹히는 물고기 전체의 70%에 해당하는 양을 사냥해서 먹어 치우며, 지표면 식생의 파괴, 외래종의 전파, 새의 멸종은 물론 이젠 지구 대기 중 기체 조성의 변화 등 거의 모든 환경 변화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쉽게 상상하실 수 있겠지만, 이 종이 인간, 바로 호모 사피엔스이다.
좋든 나쁘든 인간의 역할이 이렇게 크다 보니 이를 배제한 생태계 연구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생태계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에서는 인간이 하나의 잡음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연주를 리드해나가는 제 1 바이올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다 보니 산림이나 호수를 연구하듯 인간이 정주하는 '도시'도 하나의 생태계로 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실제로 '도시 생태계'도 생태계 연구의 한 대상으로 간주된다. 또 인간의 간섭 혹은 영향을 고려한 연구들이 생태계 연구의 주요한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 대규모 생태계 연구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미국의 '장기생태연구'의 연구지를 살펴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1970년대 말 이 사업이 처음 시작될 때는 산림, 호수, 초원, 연안과 같은 자연 생태계가 주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재 26개에 달하는 다양한 생태계 연구지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선정된 지역은 매릴랜드주의 볼티모어와 아리조나주의 피닉스라는 두 도시 근교이다. 두 도시 모두 미국에서 인구증가가 가장 급격히 일어난 곳으로 도시의 팽창이 주변 산림이나 하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이러한 생태계 연구의 기저 변화에는 결국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 녹아있다. 그런데 인간의 역할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청지기'(Stewardship)로 믿던지, 아니면 유구한 진화의 시간에서 지적 능력이 특화된 진화의 산물로 생각하던지 간에,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인간이 생태계 파괴를 막아야만 할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생태계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방법도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 과연 인간을 고려한 생태계 연구의 미래는 밝은 것일까.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최근 야심 차게 시작한 국립생태관측연구망(NEON; National Ecological Observatory Network)의 62개 연구지를 보면, 아직 인간이 정주하는 도시는 배제되어 있다.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활동까지 고려하기엔 아직 생태계 연구자들의 분석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장난감 통을 뒤집을만한 정도까지는 발달했지만, 아직은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해서 치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곧 철들 날이 오겠지만 말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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