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풀과 새, 곤충 등을 그린 그림을 화조도 혹은 영모화라 부른다. 집안을 화사하게 꾸미면서 동시에 부귀영화나 다산의 의미도 담아냈던 화조화는 조선시대 집 안팎을 단장하는 소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 많은 수요를 원화로만 충족할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한 것이 바로 판화다. '화조목판화'라는 독특한 목판화 장르를 탄생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목판으로 찍어낸 그림에 채색을 하는 화조목판화는 언뜻 보면 먹으로 직접 그린 화조화와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칼맛이 살아있다. 붓의 놀림이나 먹의 농담이 없이 선이 날카롭고 선명하다.
보통 조선시대 미술은 사대부들이 그린 문인화나 서민의 정서가 밴 민화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조선시대 판화는 기록화, 왕의 하사품,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출판물, 생활에 필요한 소품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 아직은 생소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목판화와 석판화가 내달 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목석(木石)으로 찍은 우리의 옛그림'전에서 선보인다.
전시에 출품된 200여 점은 한국 근대판화 1세대 작가인 이항성(1919-1997)씨와 그의 아들 이승일(66) 전 홍익대 판화과 교수가 소장한 작품이다. 2대에 걸쳐 모은 고판화 2,000여 점 가운데 작품성과 희소성 있는 작품만 한데 모았다.
이승일씨는 "부친이 미술책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1950년대부터 옛 판화를 열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면서 "세계 최초의 목판본과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임에도 개화기 이후 격하된 판화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열리는 중요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의궤도도 여러 점 나왔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을 하나씩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은 후 채색한 것으로, 역할과 위치가 정확히 표기되어 있다.(02)720-102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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