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과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 또 최근 덴버시'다크 나이트 라이즈'상영 극장에서 벌어진 참극까지.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죄자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일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 난 뒤 악몽 속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회상을 그린다.
홀로 사는 중년 여성 에바(틸다 스윈튼)에겐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멸시의 눈초리로 쳐다 보고 느닷없이 뺨을 때리는가 하면 집 외벽과 자동차에 빨간 페인트를 들이붓고 사라진다.
아들 케빈을 낳기 전까지만 해도 에바는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가였다. 임신 후 그녀의 삶은 180도 뒤바뀐다.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키우느라 에바는 신경쇠약 직전까지 가지만, 어쩌다 한번 아이를 안아보는 남편 프랭클린(존 C. 라일리)이 그녀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에바의 노력에도 케빈의 반항은 점점 강도를 더해만 간다. 케빈의 여동생 실리아가 태어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결국 케빈은 열여섯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에바에게 평생 끝나지 않을 악몽을 선물한다.
'케빈에 대하여'는 '쥐잡이'(1999)로 데뷔한 영국의 여성 감독 린 램지의 세 번째 영화다. 뜻하지 않게 친구를 죽게 한 소년의 불확실하고 이해 불가능한 심리와 가족 내부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그렸던 첫 영화처럼 '케빈에 대하여'도 사건 자체보다는 아픈 기억 속에서 사는 여성의 심리, 아들과 엄마의 얽히고설킨 심리관계를 서술한다. 섬뜩할 만큼 치밀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주연배우 틸다 스윈튼과 케빈으로 출연한 두 배우 이즈라 밀러와 재스퍼 뉴웰의 탁월한 연기에 힘을 입어 더욱 생생하게 나타난다.
영화는 초반부터 뒤엉킨 기억의 파편들로 관객을 혼란케 한다. 현재와 과거, 대과거가 뒤섞인 조각들의 순서는 에바의 머리 길이와 케빈의 나이로 짐작할 뿐이다. 기억의 연대기가 정렬될 무렵 새디스트와 사이코패스를 오가는 소년의 악마성도 분명해진다.
그는 원래부터 나쁜 아이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어두운 성품만을 닮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엄마와 어긋난 관계 때문에 비뚤어진 것일까. 엄마에겐 악마처럼 굴다가도 아빠가 등장하면 유순한 아이로 돌변하는 부분, 꼬마 케빈이 엄마가 들려주는 '로빈후드'를 들으며 엄마 품에 안기는 장면 등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오르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풀어내기에 두 사람 사이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하다. 영화는 외모나 행동, 말투에서 두 사람의 유사성을 찾아내면서도 그것이 중요한 원인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케빈에 대하여'는 추상적인 풍경화 같은 영화다. 토마토, 딸기잼, 빨간색 페인트 등으로 순환되는 상징과 으깨진 과자 부스러기 등을 통한 파괴와 혼돈의 은유를 반복한다. 구체적 설명은 없다. '끔찍한 사건'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대체 왜 그랬냐고. 케빈도, 관객들도 답하긴 쉽지 않다. 6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2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